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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이름은

by 회색달


어릴 적엔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왜 늘 일찍 나가 늦게 돌아오는지,

왜 우리와 함께 웃는 시간이

그렇게 짧았는지.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

자주 닫힌 방문,

말보단 기침 소리가 먼저 들려오던 밤.

어린 나는 그 조용함이

어색하기도, 때론 무섭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그 조용함 속엔

쉼 없이 돌아가는 하루의 무게가 있었고

그 침묵 너머엔

온 가족을 지키려는 굳은 결심이 있었음을.


당신은 사랑을 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보다 분명한 손길로

무거운 쌀자루를 옮기고,

겨울이면 낡은 장판 아래

온기를 채워 넣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위해 새 옷 하나 사지 않았지만

내 운동화 끈이 닳기라도 하면

다음 날 아침, 새 신발이 문 앞에 놓여 있었죠.


당신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말한 적 없지만

내 꿈을 묻고, 그 길을 비춰주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모두 바쳤습니다.


청춘을 쏟아 부어

벽돌처럼 쌓아올린 가족의 하루들.

그 위에

당신의 등이 천천히 굽어갔습니다.


나는 이제 압니다.

세상 가장 강한 사람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가족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라는 걸.


세상 가장 따뜻한 사랑은

손끝이 아니라

묵묵한 등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는 걸.


당신은

언제나 내 뒤에 있었습니다.

멀리서 지켜보며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아무 말 없이 등을 두드려주는 사람.


이제는 내가

당신을 부축할 차례가 되었을까요.

굳은 손마디에 약을 바르고

굽은 어깨 위로

잠시 나의 손을 얹어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끝없이 주고도

단 한 번도 되돌려 받으려 하지 않았던

가장 고요하고도 단단한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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