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삶이 만들어낸 나만의 흐름
어린 시절의 나는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이른 아침마다 눈을 비비며 등교해야 했고, 다들이 다니는 직장에 흘러가듯 몸을 맡겼다. 세상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건 쉬웠지만, 마음 한편에는 가을 낙엽처럼 허전함과 불확실함이 쌓여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쉼 없이 흘러가던 삶은 번아웃이라는 거대한 바위에 부딪혀 막혔다. 일상의 흐름이 멈춘 느낌이었다. 마음은 답답했고, 몸은 지쳤다. 막연히 바다로 나가 서핑을 시작했지만, 파도 위에서 균형을 잃고 발을 잘못 디뎠을 때 허리에 전해지는 끔찍한 통증이 나를 다시 현실로 불러왔다. 결국 허리 디스크가 재발했고, 일주일간 병원과 집을 오가며 출근조차 하지 못했다.
누워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뿐이었다. 그때 나는 오래전 시작했던 글쓰기를 떠올렸다. 8년 전, 작은 호기심으로 시작한 글쓰기는 조그마한 불씨였지만, 내 마음속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이번에도 그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모전 참여도 그 일환이었다. 글쓰기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닌,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포레스트웨일 출판사에서는 매월 원고 공모를 진행했고, 나는 그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글을 써내고, 출판 과정을 경험하며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나는 남들이 정해놓은 노선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한두 번의 실패도 있었다. 가슴 아픈 고배를 마셨지만, 나는 다시 노트북을 펼쳤고, 손가락은 쉬지 않고 타이핑을 이어갔다. 글은 점차 중심을 잡아갔고, 1000자를 넘어 2000자, 3000자가 되었다. 마치 가을 바람이 잎을 흔들듯, 시간과 경험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그때의 실패는 이제 파도가 되었고, 바람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공모전에 도전장을 내밀고, 결과 발표를 기다린다. 기대는 없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남이 정해놓은 노선과 시간에 맞춰 기계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버스에 그저 탑승만 하고 있지 않으니까.
버스는 큰 길 위에서 효율을 따지며 빠르게 달렸겠지만, 나는 그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몰입할 수 없었다.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작은 골목, 서늘한 가을 공기 속에 흩어진 낙엽, 자연 그대로의 숨결을 내 속도로 보고 듣고 느끼며 생각할 여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며, 조금 느리고 돌아가더라도 나의 두 발로 직접 걷는다. 글쓰기에 도전한 시간은 바로 그런, 내 속도로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이제 나는 두 발로 걸으며, 때로는 잠시 쉬고, 때로는 달리고, 자전거를 타며 내 속도와 방식대로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전까지는 내가 끌려가는 삶이었다면, 지금은 스스로 나침반이 되어 길을 찾아가는 삶이다. 반복된 시도와 인내 끝에 얻은 힘은, 내가 처음 내딛은 발걸음이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나만의 긴 여정을 향한 첫걸음이자 나침반임을 깨닫게 한다. 마흔을 넘긴 나는 깊은 가을 숲 속을 거니는 기분으로, 지나온 날들과 앞으로의 시간을 천천히 음미한다.
처음 어설프게 시작했던 글은 고요한 연못 같았다. 하지만 수많은 실패와 도전, 포기하지 않는 노력들이 시냇물이 되어 연못으로 흘러들며, 나만의 바다를 만들었다. 이제 글쓰기는 단순한 물웅덩이가 아닌, 어떤 감정과 이야기든 품어낼 수 있는 드넓은 바다처럼 확장되었다. 때로는 거친 파도가 치고, 때로는 잔잔하게 빛나는 바다처럼, 내 삶과 글은 끝없는 가능성을 담는다.
이 한 번, 두 번의 도전 경험은 결국 바다로 나아가는 속도를 내게 하는 ‘관성’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공도 관성이다. 마치 파도 위 서퍼가 처음엔 힘껏 저어야 하지만, 일단 파도를 타면 힘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듯, 내 삶과 글도 한 번, 한 번의 도전이 쌓여 이제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만의 관성을 얻었다.
결국 선택은 나의 의지와 태도에 달려 있고, 그 선택 위에 삶이 완성된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의 선택을 믿으며, 가을 바람을 맞으며 넓은 바다 위를 항해하듯 앞으로 나아간다. 글을 쓰며, 지난날의 나를 이해하고, 앞으로 마주할 미래를 그린다. 글쓰기는 나에게 희망을 주고,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약함 속에서 힘을 찾아내고,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글 속 결단과 노력은 느리고 어설퍼도 의미 있다. 실패해도, 좌절해도, 다시 일어나 도전하는 삶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알려준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내 삶, 나는 이제 내 선택으로 써 내려간다.
선택은 단지 주어진 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완성하는 행위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태도와 의지가 더해질 때 비로소 온전한 내 삶이 된다. 나는 계속 걸어가려 한다. 나답게, 내 속도로, 내 힘으로. 글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성장할 것이다. 선택은 나의 것, 삶은 나의 것,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완성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