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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느낌표가 되기까지

[ 뉴욕타임스 편집장의 글 잘쓰는 법 ] 중 스토리텔링 부분을 읽고

by 회색달

나는 공기업에서 20년 동안 일해왔다. 남들이 보기에 안정적이고 부러운 직장이었지만, 15년차가 되던 어느 날, 더는 버티기 힘든 벽 앞에 서 있었다. 회의실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몸은 무겁게만 느껴졌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 탈모가 심해졌고, 체중은 눈에 띄게 늘었다. 우울과 무기력은 내 일상을 잠식했다. ‘다들 그렇지 뭐.’ 하고 넘길 수 있는 흔한 번아웃처럼 보였지만, 내겐 그 순간이 삶 전체를 흔드는 지진 같았다.

그러던 중 지인의 권유로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독서는 오래전 나와 인연을 맺은 활동이었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 매몰되며 책은 어느새 내 삶에서 멀어졌다. 다시 책장을 펼친 것은 거의 20년 만이었다. 처음 읽은 책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 한 인간이 자기를 깨닫고 성장해 가는 이야기는 지금의 나와 놀라울 만큼 겹쳐졌다. 이어서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일이 힘들어서 이렇게 무너진 걸까? 아니면 내가 내 감정을 돌보지 않아 몸까지 상하게 만든 건 아닐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어느 순간 나는 이 물음표들을 하나씩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물음표는 결코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을 붙잡고 씨름할 때, 나는 더 단단해졌다. 그렇게 물음표는 조금씩 느낌표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단어가 있다. 바로 “knowhere”였다. 한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nowhere’처럼 느껴졌던 나의 자리가, 글자를 나누어 읽으니 “now here”이 되었다. ‘지금, 여기’에서 차분히 나를 살피고 다시 다지면 그 자리가 곧 꿈터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도망치듯 멀리 가야만 답이 있는 줄 알았지만, 답은 늘 내가 서 있는 곳에 있었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하루에 단 몇 쪽이라도 책을 읽었고, 그 안에서 길어 올린 문장은 나의 거울이자 나침반이 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독서로 마음을 채웠다면, 글쓰기는 마음을 흘려보내는 통로였다. 그 결과 문학 공모전에 입선하기도 했고, 업무와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서 기관 표창을 받는 성과도 있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성과가 아니라, 내 안에서 무너졌던 자존감을 회복했다는 점이었다.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작은 경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두면 언젠가는 능력이 된다. 벽돌 하나하나가 모여 단단한 성벽이 되듯이, 경험은 결국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 속에서의 성장임을,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 변화의 증거는 독서 동아리 활동에서 드러났다. 전국 독서 동아리 선발대회에 참여했을 때, 100명 넘는 사람들 앞에 섰다. 예전 같았으면 떨림에 목소리가 굳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달랐다. ‘내 경험을 자랑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파동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덕분에 긴장보다 설렘이 앞섰다.


이제 나는 나만의 ‘쉼표 찍는 연습’을 하고 있다. 평범한 하루라도 흘려보내지 않고, 순간마다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서다. 방법은 단순하다. 첫째, 매일 책을 읽는다. 책은 내게 쉼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준다. 둘째, 매일 짧은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동시에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연결해 준다. 셋째, 하루 10분 이상은 반드시 걸으며 생각을 비운다. 이 작은 습관들이 모여 내 일상에 리듬을 만들고, 지쳐 있던 삶에 쉼표를 찍어 준다.


누구에게나 번아웃은 찾아온다. 하지만 번아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문장을 시작하기 위한 쉼표일 수 있다. 나 역시 그 쉼표 덕분에 멈추었고, 멈춘 덕분에 다시 길을 찾았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펼치고, 글을 쓰고, 걸음을 옮긴다. 그 과정이 모여 또 다른 내일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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