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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에서 서성이다

by 회색달

밤사이 내린 비바람은
서늘한 곁을 남기고
나뭇잎을 부셨다.


햇볕이 도시의 숲을 깨우며
밤 사이 삼켜둔 빗물을
왈칵 쏟아내는 시간


흙내와 길가 풀잎 향이
가슴을 채울 때
나는
자연 속 숲이 아닌
회색빛 숲 속에 갇혀 있었다.


골목 사이 부는 바람은
나뭇잎 대신 버려진 종이컵을 뒤집고
광고 전단을 흩뜨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경적과 공사 소리는
숨 쉬는 틈마다 스며들었다.


하늘의 조각난 구름은
건물 사이 겨우 얼굴을 내밀었고
나는
그 공간에서

철제 난간과 플라스틱 화분에 갇혀
너를 맞이했다.


이곳엔 너가 머물 자리가 없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나는 문턱에서 서성이며
숲의 바람과 낙엽 향기를 그리워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나는
다시 이 숲으로 돌아와 몸을 뉘운다.


나의 안온을 포기할 수 없어서
너라는 계절을 잃은 채
마음속에 최소한의 가을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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