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반복이 힘이다

by 회색달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 눈을 뜨면 알림이 울리고, 손끝은 늘 바쁘다. 뭘 눌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쏟아지는 소식 속에 재미있는 것도 많고, 쓸데없는 것도 많다.

전부 보고 나면 머릿속은 텅 빈 기분이다. 뭐가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또 본다. 안 보면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어느새 끝나 있다.


가끔은 그런 내가 한심스럽다. 이게 사는 건가 싶다가도, 또 그렇게 산다. 멈추는 게 쉽지 않다. SNS 속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 가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안 따라간다. 조금이라도 조용히 있고 싶지만, 세상은 가만히 두질 않는다.


어느 날은 폰 배터리가 나갔다. 충전기도 없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었다. 어쩔 수 없이 승강장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오히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붙잡을 게 필요했다.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방법으로 루틴을 만들기로 했다. 대단한 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 열고, 이불 털고 정수기에서 냉수를 따라 마신다. 하루에 한 번은 손으로 뭔가 쓴다. 그게 전부다. 처음엔 이게 뭐 하나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과정이 편안했다. 그리고 하루가 조금 덜 흔들렸다.


루틴은 시끄럽지 않다. 조용하다. 그래서 오래간다. 뭔가 대단한 걸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지루할 때도 많다. 안 하면 불안하다. 몸이 그걸 기억하기까지 했다.


물은 그냥 흘러간다. 힘주지도 않고, 소리도 크게 안 낸다. 그런데도 멈추지 않는다. 조금씩 흘러서 결국 길을 만든다. 내 루틴이 그렇다. 티도 안 나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계속하면 뭔가 달라진다. 넓고 깊은 호수에 물이 천천히 차는 것처럼.


사람들은 변하고 싶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하려면 귀찮다. 큰 결심은 오래 못 간다. 루틴은 다르다. 작아서 버틸 수 있다. 조금씩 쌓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변해 있다.


물론 잘 안 될 때도 있다. 늦잠 자서 루틴을 놓치면 괜히 찜찜하다. 며칠 계속 그럴 때도 있다. 예전엔 그럴 때마다 자책했다. ‘역시 난 안 돼.’ 이제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물도 잠깐 고일 때가 있다. 그래도 다시 흐른다. 중요한 건 계속 흘러가는 거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다. 폰은 여전히 시끄럽고,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덜 흔들린다. 루틴 덕분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게 나를 잡아준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그렇게 매일 똑같이 하면 지루하지 않아요?”

지루하다. 그런데 괜찮다. 그 지루함이 나를 살렸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세상이 아무리 요란해도, 나는 내 리듬대로 간다.


오늘도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차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르게 비가 내린다. 그 바람에 이불을 털다 말고 소파에 앉아 창 밖을 한참 내다봤다.

정해져있는 순서가 아니지만 괜찮다. 알림 창이 울리지만 일단 무시한다. 세상은 그대로 시끄럽다. 그래도 괜찮다. 내 안의 물은 오늘도 흐르고 있으니까. 마치 지금 내리는 비처럼. 천천히, 조용히, 멈추지 않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