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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버티기

by 회색달



결국 작가란 성실한 현실 작업인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손을 움직이는 사람이 작가다.


책상 위 몇 년째 모아둔 낡은 종이 뭉치가 쌓여 있었다. 책을 읽은 뒤 휘갈겨 놓은 습작, 실패한 문장, 의미 없는 낙서까지. 지금 다시 보면 별 것 아니다. 그런데도 한 장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다 시간 많은 주말이면 몇 장씩 꺼내다 소파에 누워 읽었다. 그때의 내가 보였다. 어설프고, 망설이던 흔적들 속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쓰고 있었다. 제대로 된 마침표는 아니었지만 끊임없는 쉼표의 연속 덕분에 나는 숨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글쓰기에 어떠한 '감각'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과도한 힘을 주면 물속에 가라앉고, 힘을 빼면 온몸이 수면 밖으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적당히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의 감각.

다음은 '특별함'이 있어야만 이야깃거리가 되고,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흥미로운 이야기, 멋진 문장을 그대로 필사하며 '나는 왜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하는 걸까?' 자조적인 혼 잣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감각이란 쉬지 않고 갈고닦아야만 유지되는 것이고, 특별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로지 내 안에 있는 이야기가 곧 글이고, 노트북 앞에 앉아 버틴 만큼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걸. 얼마만큼 오래, 꾸준히 견디고 있느냐가 바로 글 쓰기의 전부라는 진실을. 그게 전부였다.


업무 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민원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도 버틴다는 생각 덕분에 도망치고 싶었던 나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고 지금의 직장인이자 작가의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가끔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고, 출근조차 하기 싫을 때가 있다. 머리까지 멍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그래도 책상 앞에 앉는다. 이제는 습관이다. 누가 억지로 시켜서도, 이 글의 마침표에 수많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다시 앉을 뿐이다. 이제는 하루라도 읽고 쓰지 않는다면 괜히 불안해지는 순간까지 왔다. 결국 글 은 내호흡이 되어 멈추면 답답해진다.


글은 영감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의 문제다.
결국 누가 오래 앉아 있느냐의 싸움이다.

어떻게든 마침표를 빨리 찍어야만 하는 성격이었다.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그럴수록 문장은 말라갔고 마음도 식었다. 글 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버팀의 완성이자 미학이다. 꾸준히 앉아 집중하는 만큼 글을 쓸 수 있다. 결국 남는 건 문장이 아닌, 오래도 롯 글을 쓴 사람이니까.


10월25일,낙서 더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실패가 아닌 내가 버티며 남긴 현실적인 기록이었다. 형편없는 문장이었지만 그 시도가 있었던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창피한 일이 아니가 고마운 일이고, 내 발자국인 셈이었다. 쓰기에 미쳐본 사람은 안다. 누구나 한 번쯤 남기는 흔적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신만의 문장이 완성된다는 것을. '멋진 문장은 남들도 쓸 수 있다. 하지만 꾸준한 문장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아직도 글 쓰기를 시작하면 글이 꼬이고 문장이 엉킨다. 그럴수록 멈추지 않는다. 한번 앉으면 1시간 반, 2시간 이상씩은 엉덩이 붙이고 앉을 수 있다. 글은 완벽한 체로 태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퇴고를 거쳐 나아가는 것일 뿐. 그런데도 완벽함을 쫓다 지금의 글을 놓치기 쉽다. 나는 그보단 엉성하더라도 꾸준히 버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살다 보면 하루 금방이다. 쉴 틈 없이 지나갔다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마음의 자리 문제다. 글을 쓸 때만큼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이 시간만큼은 증명하기보다 남기기를 택한다. 글쓰기 자체는 거창하거나 멋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오늘의 언어 자체를 남기는 일에 집중한다. 본 것, 듣고, 지나친 생각까지. 그게 전부 글이다. 결국 글이란 것은 언어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지 않는가. 내가 살아낸 하루의 문장은 분명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더 자주 엉성해도 쓴다


완성하려 하지 말자. 지속하자.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끝까지 쓰는 사람으로 성실한 현실 작업인이 되자. 그 현실 속 나를 위래 오늘도 나는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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