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글쓰기 : 글감과 친해지는 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 일이라고 했던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다들 인생의 변곡점 하나쯤은 품고 산다지만, 내겐 점이 아니라 거의 깊은 웅덩이였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중독과 방황의 연속에서 벗어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결국 내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다.
20년 전, 공무원이 되겠다는 다짐으로 공부했다. 주변에서는 응원보다 말렸다. '너 같은 성격으로 쉽지 않을 건데' 워낙 자유분만 하던 내 모습에서 걱정이었을 터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겼다.
대학 시절, 전국을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녔다. 오래된 버스 터미널의 퀴퀴한 냄새, 밥 바다 같은 감정이 좋았다. 그랬던 내가 하루 종일 책상에만 앉아서 일을 하게 됐으니 병이 됐나 보다. 술과 번아웃에 시달렸다. 달콤한 소주 한잔은 위로를 위장한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글에 옮겨보자면, 후회와 억울함 뿐이었다.
글 쓰기 시작한 지 7년 차, ‘평범한 날들을 위한 글쓰기’ 공저 제안을 받았다. 제목이 낯설었다. 평범한 일상으로 글을 쓴다는 말에 이해가 안 됐다.
'매일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 과연 특별함이 있기나 한 걸까'
함께 공저에 참여하기로 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다 보니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모두가 평범함에서 자신만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 과정을 기록할 뿐.
그게 전부였다. 나도 평범 그 자체를 쓰기 시작했다. 무언가 대단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확 와닿는 내용이 아니었다.
나의 평범함은 누군가의 특별함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소함을 썼다. 같은 길, 같은 신호등, 같은 간판을 지나 출근길에 만나는 모든 것을 눈에 담아두고 집에 돌아와 노트북 앞에 앉아 초고를 썼다.
한 번은 어제와 다른 아침을 만난 적 있었다. 가로수의 나뭇잎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던 낙엽이 발에 밟혔다. 잠시 신호등 앞에 멈추어 있었을 뿐이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보였다. 이 과정이 내가 글감을 찾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멈춤이었다.
점심시간에도 틈틈이 산책 중 잠깐은 멈췄다. 담벼락에 얼룩, 하늘 위 구름의 모양은 분명 오늘 아침과 달랐다. 업무 중에도 전화를 끊고는 멈춘다. 주변 사람들은 어떤 대화를 하는지 들어보기도 하고 생각을 잠시 정리하는 순간을 갖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글의 시작이었다.
다음은 다시 써보기다. 일기처럼 하루의 마지막에 주저앉아 오늘의 기억을 다시 꺼내본다. 그날의 장소에서 맡았던 냄새, 사람들의 말투, 표정 같은 것들.
대충 받았던 전화 속 대화도, 컴퓨터 웹메일로 전송된 파일을 어떻게 저장했는지 떠올리며 써본다. 그때 묻혀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온다. '아, 그때....'
그 과정에서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힘들고 지쳐있어서 그랬던 것이라 말했지만, 평범한 핑계였다.
두 가지 멈추고 쓰기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몇 년째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그 덕분에 나의 평범함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날들을 위한 글쓰기’를 내고 나서, 누군가 내게 sns 메시지를 보냈다.
“글을 읽고 저도 제 하루를 써봤어요.”
그 말을 에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의 말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어쩌면 사람사이의 온도라는 표현이 이럴 때를 두고 하는지도.
이제는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목적을 두고 쓰지는 않는다. 오로지 내 하루, 생각 같은 사소함을 적고 평범한 일상을 남긴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곳을 다녀왔는지. 그러다 보면 마음속 훅하는 문장이 내 숨통을 트이게 만든다. 그 숨의 연속 덕분에 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걷는다. 계절과 날짜가 지남에 따라 해의 길이와 바람의 온도가 차이는 있겠지만 이 또한 글의 씨앗이 되고 나의 숨이 된다. 때론 사소함이 삶을 살린다는 말을 하고 싶어 25.10.21 새벽 1시 10분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 어제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런 날의 기록 역시 언젠간 크게 심호흡할 수 있는 힘이 되겠지. 그래서 쓴다. 숨 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