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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태도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 글감과 친해지는 길

by 회색달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늘 뭔가를 계획해야만 안심이됐다. 결혼도, 일도, 그저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면 된다고 믿었다. 그길이 제일 안전한 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길 따윈 없었다.


어느 날, 같이 걷던 발걸음이 엇갈렸다. 서로의 감정이 말이 쌓였고, 균열이 생겼다. 어떻게든 사이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멀리 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이혼이라는 단어 앞에 서 있었다. 이 말을 내 인생에 쓸 줄은 몰랐다.


혼자가 된 집은 낯설었다. 불 끄면 나타나는 그 조용함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밤은 길었고, 새벽은 그만큼 느렸다. 술이 늘었다. 처음엔 그 것만이 위로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잠시 멈추게 해주는 약 같은 거였다. 그렇게 몇 달을 버텼다. 전화를 안 받았고, 사람을 피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진짜 무너그때는 정말 질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하루가 흘러가길 기다렸다. 시간이 약이라는데, 그 약은 도대체 언제쯤 듣는 건지. 그럼에도 이상하게,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아주 작게,

손톱만 하게 남아 있었다.어쩌면 그게 내 안에서 겨우 남은 불씨였을지도.


하루는 병원에 갔다. 대기실엔 말이 없었다. 누군가는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계속해서 통화하고 있었다. 그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그랬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창한 이유 없이 오로지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였다.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루를 버티는 방법이었다. 후회, 두려움, 어제의 생각. 그런 것들을 그냥 써 내려갔다. 한 줄이라도 쓰면 좀 나았다. 글이 쌓이자 덜 어지러웠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었다는 걸. 숨 쉬고, 생각하고, 쓰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면 됐다.


그렇게 쓴 글을 모아 공저 작업에 함게했다. 제목은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알게 됐다. 옳다는 건, 나중에야 알 수있는 거였다. 그땐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그때의 나도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선택은 결국 옳았다.
증명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다시 읽으면 장면들이 떠오른다. 싸우던 날, 울던 밤, 혼자 걷던 새벽. 그 모든 게 섞여 하나의 길이 됐고, 지금의 내가 걷고 있다.


책이 나왔을 때 누가 내 SNS에 댓글을 달았다.
“당신의 글이 위로가 되었어요.”

그 한 줄이 가슴을 울렸다. 부끄럽고 낯설었던 감정들이 누군가에게 닿아 울림이 됐다는 것. 참 묘했다.


이혼도, 번아웃도, 외로움도 결국 다 나를 다시 쓰게 만든 재료였다. 삶에 완벽한 선택 같은 건 없다.

옳고 그름은 늘 시간이 지나서야 보인다. 후회나 자책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버티는 방식 하나가
삶의 방향을 천천히, 조금씩 틀어놓는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요즘은 무너질 일에도 덜 놀란다.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 예상 밖의 일이 생겨야 새로운 얘기도 생긴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던 비결은 그 때의 변수 덕분이다. 그때 쓴 글들이 내 손을 잡아줬고, 다시 삶이 시작됐다. 이제는 고통이 와도 피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한다. 쓰다 보면 알게 된다. 고통은 나를 부수는 게 아니라 다시 쓰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하루를 적는다. 삶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덕분에 나는 쓴다.
또 한 줄이 생겼다.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뜻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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