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부딪히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삶의 구석구석을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여름과 가을 사이, 뜨거운 해가 아직 달에게 자리를 내주기 싫어 버티며 늘어지는 시간의 색.
회색과 검정, 하얀빛만 엉켜 있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색을 한 번쯤 내보고 싶었다. 그즈음, 내 발끝에 닿은 건 서정이 묻은 한 권의 시집이었다.
누구의, 누구의, 또 누구의 문장 하나에 매달려 있다가, 보이지 않는 작가의 눈물 몇 방울에
괜히 따라 울컥했다.
그리고는 이상하게,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