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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

36.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아침 일곱 시, 오랜만의 휴무 아침인데도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지대가 높은 탓도 있지만, 건물이 오래된 영향인지 창문이 바람에 덜거덕 거리는 통에 늦잠은 포기해야 했다. 때 아닌 강풍 주의보 소식이었다. 창문 틈에 종이를 접어 고정시키고 나서야 소파에 앉을 수 있었다. 잠은 이미 완전히 달아났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밤새 켜둔 스탠드와 며칠째 읽는 중인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 김혜남.


어느새 11월 마지막 화요일. 나는 12월을 새해 1월이라고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 지 만 5년째다. 누군가는 연말 회식에, 누군가는 여행을 떠날 시간이겠지만 나는 되도록 조용하게 12월을 보낸다. 남들과 비교하거나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12월 한 달을 나만의 ‘안식월’로 정하고, 올해의 시간을 되짚어보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은 새 달력의 첫 장이 열리면 신년계획을 세운다. 다이어트, 금연, 여행, 공부, 취업 등 각자 다른 열망들이 달력 칸에 빼곡히 채워진다. 하지만 한겨울의 1월은 생각보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시기다. 결국 따뜻한 방 안에서 귤을 찾게 되고, 전기장판 위에서 ‘내일부터’라는 주문만 되뇌기 마련이다. 그러니 작심삼일은 개인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독서를 택했다.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적당한 노력만으로도 있어 보이는,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오래가는 취미이자 목표였다.

같은 직장에서 부서를 옮긴 뒤, 앉아서 문서 작업하는 시간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공문을 만들고 민원인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길 때도 많았다.

처음 몇 개월은 정신없이 일을 따라가기 바빴지만, 업무가 익숙해지자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남은 시간엔 다른 부처의 동향을 살피고, 사전 자료를 정리해 두며 대응 준비를 했다. 그 결과 비슷한 업무를 맡은 타 부서보다 한 발 앞서가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바쁜 와중에도 그런 성과를 내는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였는지 몇몇 부서에서 업무 공유 요청도 들어왔다. 하지만 말주변도 부족하고, 복잡한 내용을 정리해 전달하는 건 또 다른 난관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냐’며 옆에서 말리기도 했지만,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헤매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 손을 벌린 곳이 도서관이었다. 자료를 더 깔끔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라도 공부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학교에서도 배우지 않았고, 직장 사수도 없이 시작한 일.

혼자 황무지를 개척하듯 한 구석씩 팠다. 퇴근하면 도서관, 주말이면 다시 도서관. 발표도 해야 하는 업무였기에 TED에 출연한 강사들의 자서전이나 관련 도서도 빠짐없이 찾아 읽었다.

지금이야 하루에도 수십 건의 공문을 가볍게 처리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비결은 꾸준히 읽었던 책들 덕이다. 행사 하나를 준비할 때도 기획과 협조, 검토를 수십 번 반복해야 했는데 독서로 쌓인 독해력과 정리 습관 덕에 나 스스로 만든 질문과 해답이 생겼고, 그만큼 실수도 줄어들었다. 아마 지금의 성과는 그 오랜 질문의 결실일 것이다.


책과 연결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부모님이 사주신 얇은 전집, 파브르 곤충기였다. 작은 곤충들의 움직임이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 이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떤 책이 나에게 맞는지 알지 못했다. 교과서와 참고서만 읽던 시절에는 독서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멀리 돌아다녔다. 어른이 된 지금, 도서관과 책은 내게 ‘막다른 길에서 숨을 돌리게 해주는 공원’ 같은 존재다.


열심히 달리기만 하던 어느 날, 정작 내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남들처럼 같은 트랙을 달리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호흡이 아닌 속도로 뛰다 보니 금세 숨이 턱까지 찼다. 더 빨리 달려야 한다는 조급함보다, 잠시 멈춰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크게 밀려왔다.

결국 트랙을 벗어났다. 여행을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람도 많이 만났다. 하지만 그런 환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잠깐의 휴식일뿐, 허전함을 메우지 못했다. 술은 오히려 정신을 녹였고, 나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만 더 키웠다.


나는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갔다. 회피라기보단 ‘우회로’였다, 먼저 살아본 이들의 이야기를 빌려 단단해지고 싶었다. 세상을 먼저 건너온 사람들이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그 길에 내 고민과 닮은 흔적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싶었다.


가끔은 문장 하나를 건더기 같은 걸 씹는 느낌으로 삼킨다. 그러다 보면 혼자 앉아 있음에도 세상과 연결된 것 같은 감각이 든다. 때로는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조각처럼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타인에게 너무 가까이 붙어 있기보다, 내 속도로 걷고 싶은 사람이다.라고.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눈군가는 오늘을 버티느라 이를 악물었다 하고, 누군가는 이유도 없이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또 누군가는 아주 사소한 기쁨을 붙잡으며 하루를 견딘다는 평범한. 그런 걸 보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잠시라도 내가 붙잡힐 이유가 곳곳에 있으니까.


나는 막힐 때면 글을 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쓰고 나면 마음속의 딱딱한 덩어리가 조금은 풀린다. 대단한 위안을 기대하지 않는다. 작은 숨구멍이면 충분하다. 지금 이 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쓰고 있다. 내 문장이 당신 손에 닿아 있다는 사실, 당신의 눈길이 이 글 위를 한 번 스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잠깐은 같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듯 든든하다.

어른으로 산다는 건 누가 대신 길을 닦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앞서 걸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붙잡을 작은 손잡이를 찾는 일이다. 그 손잡이 덕분에 나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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