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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안아두는 일

37.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이 있다.
하필 그럴 때면 어김없이 불려 나오는
마음속 오래된 그림자들.
마치 나를 시험하는 것만 같다.

예전엔 그 어둠이 싫었다.
빠져나오려고 허우적대며,
왜 나만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냐고
투덜거리곤 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어둠은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겠다.
내가 약해질 때마다 찾아왔다가,
때가 되면 또 아무 일 없었던 듯
빠져나갈 뿐이라는 것을.

김혜남 작가의 『어른으로 산다는 것』엔
우울의 끝이 꼭 비관적인 모양만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겪었던 불행한 어린 시절이
오히려 창조의 기반이 되었고,
영화 <가위손> 속 소년의 상처투성이 손끝이
누군가에게는 눈꽃을 흩날리는 빛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빛을 만든다.
발등으로 떨어지던 눈물을 살짝 떼어내
밤하늘에 별 하나를 걸어두는 방식으로.

누구나 별을 하나쯤 품고 산다.
다만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우울의 골짜기에서는
그 작은 빛이 도리어
더 또렷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어둠을 끌어안는다.
빛을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빛을 만들어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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