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한동안 나는 멈추지 않고 살았다. 멈추면 무너질 것 같았고, 가만히 있으면 뒤처질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움직였다.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공저를 냈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으로 향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으면, 그게 나를 조금은 안심시켜 줄 거라 믿었다. 어쩌면 그 결과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앞만 보게 하는 눈가리개를 쓰고 달렸다. 경주마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지쳤다는 사실을 나는 꽤 늦게 알아차렸다. 이만큼 달렸는데도 내 삶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다시 불안으로 이어졌다. ‘왜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대로일까.’ 연말이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자꾸 마음 한쪽에서 올라왔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나를 너무 혹사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정작 지금의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닐까.
행복에 대해 쓴 책들을 읽다 보면 비슷한 문장을 자주 만나게 된다. 『행복의 기술』이나 『행복의 함정』 같은 책들은 행복해지려는 의무감 자체가 문제의 시작일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그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20대와 30대 초반의 나는 지금 참고 견디는 시간이 언젠가는 보상으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 1년 뒤, 10년 뒤의 나는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증명하려 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쉬는 날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질 만큼, 나는 늘 ‘잘 살고 있다’는 증거를 필요로 했다.
행복에 가까워지려면 결국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은 다시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왔다. 돈이었다. 얼마가 있어야 조금은 안심할 수 있을까. 얼마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도 될까. 퇴직 무렵의 삶을 기준으로 숫자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계산해 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해 오던 저축과 연금이 있었고, 따져보니 나는 지금도 꽤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위태롭지는 않다는 생각. 갑자기 상황이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삶은 눈에 띄지 않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더 가지려 할수록 마음이 흔들렸고, 내려놓기 시작했을 때 오히려 숨이 쉬어졌다. 그동안 나는 나 자신의 속도보다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살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늘 누군가의 속도를 의식했고, 그에 맞추기 위해 나를 계속 앞세웠다. 보여주기 위한 삶에서 한 발 물러서자, 삶의 중심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만약 계속 같은 속도로만 달렸다면, 나는 여전히 비슷한 불안과 피로 속에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기만 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 불안 덕분에 나는 멈춰 설 수 있었고, 멈췄기 때문에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었다. 안정이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나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라는 사실을 조금 늦게 배웠을 뿐이다.
나는 좋은 집과 좋은 차, 높은 연봉을 원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정말로 나를 위한 욕망이었는지는 이제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을 지나며 분명해진 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마음의 공허함을 대신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앞으로 또다시 지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예전처럼 억지로 버티기보다 잠시 멈추려 한다. 잠시 멈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역시 누군가가 멈추고 싶어질 때 조용히 곁에 서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 아직 오지 않은 행복을 위해 지금의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걸음을 늦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꽤 잘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