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착각, 목표는 왜 2월에 사라질까

by 회색달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로 출근한다. 올해로 20년째다. 중간에 부서 이동이 몇 번 있었을 뿐, 하는 일의 결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 해 동안의 업무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고민한다. 동시에 비용 절감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입사 이후 달력만 바뀌었을 뿐, 내 하루의 구조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재작년까지 두 사람이 나눠하던 업무를 지금은 혼자 맡고 있다. 처음엔 분명히 말했다. 혼자서는 어렵다고,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고. 야근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초반에는 퇴근을 포기한 날이 잦았다. 사무실에 딸린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고 바로 출근한 날도 있었다. 하나를 처리하면 두 개가 밀려왔다.


25년 12월이 되면서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 업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 전에 나올 질문을 예상하고 자료를 미리 챙겼다. 반복되는 작업은 체크리스트로 만들었다. 일정표를 새로 쓰지 않아도 다음 단계가 이어졌다. 작년 말, 그 과정을 근거로 포상금을 받았다.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기보다,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한 결과였다.


이 흐름을 가능하게 한 건 또 하나의 습관 덕분이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항상 책을 펼친다. 몇 년째 지키고 있는 방식이다. 책상 왼쪽 끝에 독서대를 두고 자리를 고정했다. 한쪽이라도 읽겠다는 생각으로 정한 위치다. 몇 줄 읽다 전화가 와도 책은 덮지 않는다. 읽다 말아도 그대로 둔다. 퇴근할 때도 책은 그 자리에 남겨둔다.


독서와 업무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닮은 점이 하나 있다. 둘 다 동기보다 반복으로 유지됐다는 점이다. 매일 같은 순서로 일을 처리했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책을 펼쳤다. 그 반복 덕분에 업무에서는 실수가 줄었고, 독서에서는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사라졌다.


26년 1월, 독서 목표를 적었다. 연간 60권. 월로 나누면 네다섯 권이다. 숫자를 적어 놓고 다시 봤을 때, 가능해 보였다. 주말을 조금만 쓰면 될 것 같았다. 새해 목표치 고는 과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1월의 마지막 날, 독서 기록을 정리했다. 읽은 책은 세 권이었다.


남은 달과 남은 권수를 적어봤다. 시간은 충분해 보였지만, 지금 속도로는 도달하기 어려웠다.

그날 저녁, 하루의 시간을 다시 써봤다. 오전 업무, 점심 식사, 오후 회의, 퇴근 후 약속. 계획표에는 ‘연간 60권’이 있었지만, 오늘 하루 일정표 어디에도 독서를 적어 넣을 자리는 없었다. 아침에 책을 펼쳐두긴 했지만, 몇 쪽을 읽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에는 휴대폰을 먼저 집었고, 오후에는 일에 밀려 책을 다시 펼치지 못했다.

‘어라?’

목표는 분명히 있었다. 다만 하루 안에서 쓰이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몇 달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나란히 놓고 봤다. 같은 사무실, 같은 책상, 같은 동료들. 퇴근 후에는 직장 동료와 소주를 마시는 날이 몇 번 있었다. 생활의 동선은 거의 같았다. 조건이 그대로라면 결과도 달라지기 어려웠다.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여전히 24시간이고, 일주일은 같은 속도로 반복된다. 시간을 늘릴 수는 없다. 대신 어디에 쓰였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하루를 다시 쪼갰다. 짧은 영상을 넘기던 시간, 목적 없이 이어지던 연락, 이유 없이 붙잡고 있던 체류 시간을 하나씩 적었다.


세 번째로 떠오른 건 몰입의 방향이었다. 나는 해야 하는 일에는 집중했다.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대신하고 싶은 일은 늘 뒤로 밀렸다. ‘지금은 바쁘니까’라는 말 뒤로. 여유가 생기는 날은 오지 않았다. 우선순위를 다시 적었다.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 해야 하는 일을 그 과정으로 옮겼다. 이후 목표를 새로 세우지 않았다. 대신 하루를 먼저 나눴다.


출근 후 업무를 시작하기 전 10분,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 5분, 사무실이 비는 짧은 공백에도 이 시간을 독서로 고정했다. 완독은 목표에서 지웠다. 대신 오늘 읽을 분량만 남겼다. 다섯 쪽. 책을 여는 행동만 유지했다.

미라클 모닝 같은 이름은 필요 없었다. 이미 반복되고 있는 동선을 기준으로 목표를 놓았다. 바꿀 수 없는 일정 사이에 바꿀 수 있는 행동을 끼워 넣었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라는 시간은 결코 새로 주어질 수도, 변화할 수도 없다.”

다시 쓸 수 없다면 선택지는 단순했다. 오늘을 어떻게 쓰느냐.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내일을 바꾼 건 내일의 다짐이 아니라 오늘 남긴 기록이었다.


2월은 실패의 달이 아니다. 나를 확인하는 달이다. 2월이 되어서야 1월에 적어 둔 목표를 다시 펼쳤다. 그 목표가 오늘 하루 어디에 놓여 있는지도 함께 봤다. 버릴 건 없었다. 다만 연간 계획으로만 남아 있었을 뿐이다. 실행 단위를 바꿨다. 올해가 아니라 오늘로.

오늘도 다섯 쪽을 읽고 책을 덮었다. 내일도 같은 자리에 책을 둘 것이고 이 행동은 반복될 것이다. 그게 내가 선택한, 작년과는 다른 올해의 2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