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는 미뤄두는 사이 식는다.

by 회색달

​어느 유튜버의 스위스 여행 영상이 기억난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다 보니, 남의 여행길을 훔쳐보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됐다. 카메라는 낯선 경관을 비추다 커다란 개 한 마리 앞에서 멈췄다.


​버니즈 마운틴 도그였다. 칠흑의 털 위로 가슴의 흰 빛이 번진 얼굴. 성체는 쉰 킬로그램에 육박한다. 제 몸보다 무거운 수레를 끄는 종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에도 등장하는 그 개는 자주 제 무게를 잊는다. 앞뒤 재지 않고 무릎 위로 오르고, 품 안으로 파고든다.


​주인은 밀어내지 않았다. 털의 무게보다 녀석의 온기가 먼저 피부에 닿은 탓이다. 영상 말미의 한 문장을 메모지에 옮겨 적었다.


​“3년은 자라고,
3년은 사랑하며,
3년은 이별하는 개.”


​인간의 시간에 비하면 아홉 해는 짧다. 하지만 짧다고 가벼운 건 아니다. 생이 짧다는 건 매일을 소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일로 미루면 남는 게 없다. 개는 내일을 계산하지 않으므로 어제를 복기하지 않는다. 기억에 사랑을 가두지 않으니 꼬리를 흔드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반면 인간의 사랑은 유예된다. 사과는 내일로, 화해는 다음 주로 미룬다. 상처를 쥐고 자존심을 앞세우는 건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오만한 탓이다. 연인과 다투며 비겁하게 손익을 계산하는 사이, 무한하다고 믿었던 사랑의 총량은 조금씩 줄어든다.


​사랑은 체면을 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무거운 개가 사람에게 무게를 싣는 일은 몸으로 건네는 가장 확실한 언어다. 사랑은 오래 살아남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기대는 일이다. 떠날 날을 알면서도 오늘을 다 써서 머무는 일이다.


​영상 속 개의 묵직한 온기가 잊히지 않는다. 혹여 나는 미루어두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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