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을 늘리는 2가지 방법
문장을 보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더 복원시키는 과정이다.
글을 쓰다 보면 분명할 말은 다 한 것 같은데 원고 분량은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이미 묘사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1000자 근처에서 글이 끝나버린다.
공모전 제출 분량인 3000자, 4000자를 떠올리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도대체 무엇을 더 써야 할까.
이럴 때 이전의 나였다면 말을 덧붙였다. 비슷한 표현을 반복하거나, 개념을 조금 더 풀어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그렇게 늘어난 문장은 내가 읽어도 밀도가 옅었다.
끝내 내가 생각한 결론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장면은 있지만, 독자가 멈추고 머무를 만한 시간을 더 제공해야 했다.
나와, 독자사이에 그럴만한 시간의 여유, 유명 작가들의 글을 읽다 보면 이 표현을 공감이라고 정리할 수 있었다.
더 구체적인 방법은장면을 하나 더 보여주는 것이다. 단, 설명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즉 스토리텔링이 이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이렇게 쓸 수 있다.
“승진 발표에서 탈락했다.”
사실은 있지만, 독자가 얻는 경험은 없다.
여기에 시간을 조금 더 두자면,
사내 게시판 앞에 서서 명단을 천천히 내려 읽었다. 혹시 놓쳤을까 싶어 다시 올려 확인했다.
내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후배의 이름이 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어…” 하고 말을 꺼냈다가 멈췄다.
이제 사건은 조금 더 살아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여전히 짧다.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를 켰다. 업무 메일을 열어보지만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배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다음에 되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입이 까끌했다.
설명을 늘린 것이 아니다. 몇 분의 시간을 더 머물렀을 뿐이다. 그 몇 분이 글의 길이를 바꾸는 것이다.
방법 1. 개념을 설명하지 말고 사람을 등장시킨다.
글이 짧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정답을 내려버리기 때문이다.
“실패는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사람이 없다.
대신 이렇게 쓸 수 있다.
합격자 발표 페이지를 닫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봤다. 수험번호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지만 현실은 변함없었다. 휴대전화로 부모님의 번호를 눌렀다가 지웠다. 저녁 식탁에서 괜히 말수가 줄고, 국이 짜다고 했다.
여기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이 등장한다. 망설임이 있고, 사소한 행동이 있다. 개념은 요약이지만, 사람은 이야기다. 요약은 짧고, 이야기는 길다.
방법 2. 글은 사건과 결론 사이를 이어주는 일이다.
“나는 좌절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성장했다.”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는 완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하루, 아니 수많은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그날, 발표에서 실수한 날을 떠올렸다. 마이크를 잡은 손이 떨렸다. 준비한 큐카드를 떨어뜨렸다. 객석의 눈빛이 마치 나를 잡아먹으려는 야생 동물 같았다. 최초 한 시간 발표에서 10분이나 일찍 끝났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나질 않았다.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는 동안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다시 열어 원고를 고쳤다.
하루는 분명 어제와 같다. 다만 뇌에 기록하기 편 압축할 뿐이다. 분량을 늘린다는 것은 압축된 시간을 다시 펼치는 일이다. 그럼 왜 시간을 줄이는 걸까? 빨리 요약하고 결론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감정 속에 오래 머물다 보면 피곤하다. 그날의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도 쉽지 않다. 독자가 지루해할까 봐 걱정도 된다. 뇌에서는 사건과 교훈만 남긴다. 과정은 지운다.
하지만 서사는 그 과정 속에 있다. 건너뛰고 싶은 순간, 말하지 않았던 선택, 아무 일 없는 듯 흘려보낸 하루. 그 하루를 다시 적는 순간 글은 길어진다. 그리고 조금 더 짙어진다.
결국 분량을 늘린다는 것은 문장을 늘리는 기술이 아니고, 비슷한 말을 조금 다른 모양의 말을 나열하는 요령도 아니다. 시간을 늘리는 태도이며, 그때의 감정에 조금 더 오래 머무려는 노력이고, 용기다. 또한 기억사이 공백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글은 결국 얼마나 시간을 다시 복원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한 번 지나간 장면을 다시 꺼내어 천천히 따라가는 일. 분량을 늘린다는 것은, 어쩌면 어제의 내 삶을 잠시 빌려 살아보는 연습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