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파도가 밀려왔다.
사르륵
넘기는 소리 속에서
겨울 바다가 열렸다.
바다로부터
수백 킬로 떨어진 곳인데.
문장 속 바다와
책장의 파도 소리
갈라진 손끝에
하얀 종이의 살결이 스치고
거칠어진 지문 위로
문장이 넘친다.
총구를 떠난 손으로는
조용히 바다를 쓰다듬으려다
이내 그만뒀다.
파도는
쥐고 있을 수 없으니까.
차갑게 지나가는 날들도
억지로 묶어 두지 않는다.
모래처럼
파도처럼
그냥
흩어지도록
한 장씩
조용히 넘길 뿐이다.
겨울은 깊고
시간은 흐르고
바다는
제 갈 길로 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