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봄, 한 편의 영화가 화제를 모았다. 개봉 첫 주부터 관객 수가 빠르게 늘었고, 뉴스에는 연일 흥행 소식이 이어졌다. 겉으로 보면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잘 만든 한 편이 제때 나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장면이 완성되기까지는 수없이 엎어지고 다시 찍는 시간이 쌓인다. 몇 번을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날들, 이게 맞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들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 영화를 만든 장항준 감독 역시 그런 시간을 지나왔다. 작품을 내놓아도 조용히 지나가던 시기가 있었고, 다음 작업을 이어갈지 고민해야 했던 순간도 있었다. 방향을 잡았다가 놓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시간. 그럼에도 여기까지 온 이유는 단순하다. 중간에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7년째 같은 원고를 붙잡고 있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는 데 하루가 다 가는 날도 있었다. 페이지 수는 늘지 않는데, 파일 저장 날짜만 쌓여갔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시작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2년 전에는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를 썼다. 그 책에는 지나온 선택을 후회하기보다, 오늘을 책임지고 내일을 이어가자는 마음을 담았다.
그 시간은 멈춰 있던 흐름 위에 찍힌 쉼표 같았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돌아오기 위한 시간이었다. 완성된 한 권을 손에 쥐었지만, 결국 다시 남은 것은 이어서 써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요즘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원고들을 다시 펼쳐 읽는다. 이미 지나온 문장들이지만, 그때의 내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왜 여전히 쓰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이 반복을 이어가고 있는가. 여전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결국 책을 덮는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른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바다 위에서 혼자 싸움을 이어가던 한 사람. 그는 끝내 모든 것을 가져오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남겨진 것은 완전한 성취가 아니라,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는 흔적뿐이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 반복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틀린 방향일 수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화요일 밤 10시 30분. 아침부터 부산으로 부고를 다녀오느라 왕복 8시간을 운전했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한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덮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대신 책상 앞에 앉았다.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다시 문장을 붙잡는다. 늘 잘 쓰지도 못하는 이 일을 왜 계속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지만, 손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쓰고 있고, 늘 의자와 한몸이다.
오늘은, 나에게 안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