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살이 박인 손으로, 나는 매일 글을 쓴다

by 회색달


스마트폰 알람에 눈을 뜬다. 물 한 잔을 마신다. 출근 전, 책상에 앉아 10분간 책을 넘긴다. 퇴근 후에는 밤 아홉 시가 지나서야 마침표를 찍지 못한 글에 매달린다. 이 일은 2019년 부터 시작됐다.


이 일을 ‘내 기억을 의지로 가꾸는 시간’이라 부른다. 글쓰기는 그런 일이다. 이미 지난 일에 얽매이지 않는 노력. 억울함이든, 행복이든 마찬가지다. 감정에 휩쓸려 오늘과 내일까지 흔들리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반대로 살았다. 과거에 묶여 있었다. 벗어나는 데에도 오래 걸렸다.


내 글 속 주인공의 모습은 늘 독자에게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지금 보는 장면을 그대로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달릴 때도,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때도, 공원 벤치에 앉아 쉴 때도 그렇다. 때로는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 하나를 골라 보여주기도 한다.


글의 배경은 내가 보고, 듣고, 소리쳤던 공간이다. 자라난 곳도 있고, 우연히 스쳐 지나간 장면도 있다. 모든 장면은 평범하지만, 나의 기억이기에 동시에 특별하다. 그래서 나는 평범한 날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기록한다.


어린 시절,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녔다. 한곳에 오래 머문 기억이 거의 없다.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도 낯설었다.

대신, 이동하는 기억이 더 많았다. 마을버스로 두 번은 갈 거리를, 매일 두 시간 가까이 걸어 학교에 다녔다.

비 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트럭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흙먼지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른이 된 후에도 두 해를 넘기면 이사를 했다. 전세값이 계속 오르던 시기였다. 단 한 번, 3년을 한 곳에 머문 적이 있었다. 이혼 후 아파트 정리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버텼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기록을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마음속 울분을 토해내듯, 꺼내놓지 못한 말과 생각을 계속 써 내려갔다. 그때의 글은 대부분 분노였다.

쓰고 나면 속이 시원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관심을 둔 적도 없었다. 그러다 책과 영화, 음악을 닥치는 대로 접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를 읽은 뒤에는 지금의 내 태도가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글쓰기를 계속하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다.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계속하고 있었다. 아침에는 책을 넘겼고, 밤에는 하루를 몇 줄로 남겼다.

운동하다 허리디스크로 입원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침대에 누워, 할 일이 없어 계속 읽었다. 지루해지면 스마트폰을 들어 두 엄지로 생각을 옮겼다.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되고 싶은 모습을 글에 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무채색이던 기억에도 빛이 들기 시작했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글을 쓰고 싶던 때도 있었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는 상상도 자주 했다. 물론 대부분 떨어졌다. 목적이 있는 글과 목표가 있는 글의 차이를 느꼈다. 내가 쓸 글의 방향을 정했다.


내가 쓰는 글은 평범하다. 빠르게 흐르는 하루 속에서 한 장면을 골라, 스케치하듯 옮긴다. 그리고 다시, 퇴고를 반복한다. 그림으로 치면 덧칠하는 단계다. 그림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몇 년에 걸쳐 완성되는 작품도 있다. 그러니 단번에 끝내겠다는 욕심은 오래전에 버렸다.


작업하다 답답하면, 집 근처를 걷는다. 어제 본 사람이나 길고양이를 다시 만날 때가 있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내가 조금씩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졌고 외부의 흔들림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매일 같은 장소를 찾는다고 해서 평범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을 길을 요즘처럼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는 계절에는,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스마트폰을 꺼낸다. 본 그대로를 적고, 감정을 덧칠한다.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라는 책의 제목 처럼, 나는 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이제는 잊히는 기억이 점점 많아진다.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분명한 건, 그때도 책을 들고 다녔고 매일 글을 썼다는 사실이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남은 기록이 그 증거다. 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또 다른 계절을 기록할 때다. 매 순간이 특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생각하는 대로 쓰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