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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Apr 24. 2024

32.내 몫의 글쓰기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몰입한 건 5년 전 즈음이었다. 짧은 문장을 sns에 올리는 게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중얼거리다 보면 나 역시 말 몇 마디가 손으로 옮겨졌다. 그렇게 시작된 나만의 글쓰기.

처음부터 볼펜으로 쓰는 것보다는 스마트폰에 포함된 기능 중 하나인 메모장을 이용했다. 한 줄, 세 줄,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손가락의 움직임은 쉬지 않았고, 어느새 긴 시간 동안 나는 글쓰기와 함께 하는 중이다.  

   

 애초부터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당시 내 일상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정신병에 가까운 대인기피증까지 겹쳐 알코올에 의존하는 인생이었다. 늘 주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뒤쳐 지 않기 위해 달리기를 멈추는 법이 없었다. 무한 경쟁 시대 속에서, 비범하지 않은 나는 평범한 인간 중 하나였고 몇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다시 달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이었다고 생각했다. 일터, 가족, 친구, 동료 등등, 모두에게서부터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다가 맞이한 번-아웃.


 쉬지 않고 들이키는 술잔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위로하는 존재였다. 투명한 유리잔에 가득 찬 모습을 볼 때면 종일 있었던 힘든 일이 씻겼다. 늘 후회는 선불이다. 어제의 위로는 어디로 갔는지, 밤늦도록 마신 술은 어그 다음 날 진한 숙취만 남기고는 떠났다. 아직 제대로 깨지 않은 정신에 부랴부랴 눈을 떠서는 운전대를 잡은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 중 하나라고 알고 있지만, 그땐 매일 아침의 일상이었다.      

      

 그랬던 내가 변하게 된 계기는 글쓰기 수업 덕분이었다. '늘 자신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여러 길이 있겠지만 가장 쉬운 방법이 글쓰기입니다.'라는 스승님의 말씀에 없던 용기까지 생겼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글 쓰는 것보다 술잔을 드는 일이 더 쉬웠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보다 늘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보는 건 그다음이었으니까.     

     

 혼자 심각해했고, 혼자 우울해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엇을 읽든 다음에는 쓰기에 집중만 하면, 기분이 나아졌다. 세상 모든 고민은 내가 짊어지고 가는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먼저 알아봤다. 늘 신경이 곤두서있던 사람이 어느샌가부터 책을 끼고 다니더니, 얼굴부터 여유가 생겼단다.     

그땐 책상 한 구석에 아예 책 몇 권을 쌓아두고 있을 때였다. 하루종일 업무 서류철에 파 묻혀 지내다가도, 잠시 짬을 내어 밖으로 나가 숨을 돌리고 왔다. 이 시간을 '나만의 속도'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한 시간에 5분, 10분 정도는 일어나 주변을 산책하거나, 짬 내어 책도 읽고, 사람들과 대화도 하는 것.


 나는 흡연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신없이 업무에 하다 보면,  어느 날은 두, 세 시간도 동안 엉덩이 한번 안 데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없던 허리 디스크와 안구건조증까지 생긴 나에게 이 시간은 나에게 강제로 부여하는 유일한 휴식시간이기도 했다.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글쓰기. 보통은 하루 한 편의 2000자 이내의 짧은 수필을 써 가족 카톡방과 글쓰기 모임의 단채채팅방에 올려둔다. 사람들은 과거 우울증 환자였던 내가 이렇게 변한 사실에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깜박하고 오랫동안 글을 보내지 않은 때에는 이런 연락도 온 적 있다. '요즘은 왜 글 안 써?'    


작가라면 '늘 써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작가라는 이름을 선망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쓰다 보니 마음에 안정감이 생겼다. 가끔 내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거나 억울하다고 생각될 땐 마음이 요동쳤지만, 지금은 한순간이다. '읍!'  하고, 숨 한번 참는다. 그리고는 조용한 곳을 찾아 책을 읽는다. 나만의 분노를 조절하는 기술을 터득한 셈이다. 이제는 타이머를 맞추어 놓고 잠시 동안만 혼자 화를 내고는 알람이 울리면 바로 마음에서 털어놓는 방법도 사용하는데 이건 유명 심리학자가 제안했던 방법이다. '딱 정해진 시간만큼만 화내기'라나.  


 많은 업무를 하면서도, 나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비결은 계속 적는 것이다. 무엇이든 좋다. 모니터 주변으로 포스트잇을 붙여해야 할 일을 정리해 둔다거나, 스마트폰을 열어 적어둔다. 모든 건 기록, 쓰기에서 비롯된 여유다. 안정, 여유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얻은 진정한 기쁨은 스스로의 성장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퇴근 후 집으로 곧장 가는 것보다는 도서관과 독서실에 들러 그날의 일기를 썼다. 이 시간의 글쓰기는 마치 넓은 바다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을 맞으며 숨을 내쉬고, 모래 위를 걸으면서 느껴지는 모든 세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관찰하며 지금 내 길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무엇이 내 삶인지, 지금이 내 속도가 맞는 것인지 등등.     

 

 그 결과 변화가 일어났다. '남이 아니라 나에게 모든 기준을 맞춘다'라는 말을 이해라도 한 듯 유행하는 옷이나, 유명 여행지에서 찍어 올리는 sns 속 이야기가 더 이상 신기하지도, 부럽지도 않았다. 이제야 삶에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 것이다.


바로 내 안의 잠든 나를 깨워 같이 걸어가는 일, 그것만이 올바른 삶이었다. 남들과의 비교도, 열등감도 없는 그런 삶.     

     

'카페인 우울증'이라는 말이 있다. 얼마 전부터 인터넷이며, 뉴스에도 나오는 유행어다. 모르는 사람은 정말 커피의 성분인 카페인이 부족하여 생기는 마음의 상태라고 생각하겠지만 '카페인'은 SNS의 대표 격인 '카카오스토리'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앞 글자를 따 부르는 말이다. 남들의 화려한 삶을 보다가 자신의 평범한 생활과의 비교에서 오는 심리적 우울감을 뜻한다.

      

 처음에는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인간의 기술, 문명이었을 것이다. 다만 지나치면 해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SNS. 스마트폰 하나면 연결되는 사이버 세상인 것이다. 쉽게 남들과 이어진 만큼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나는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카페인 우울증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집중하는 수단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운동, 독서, 여행, 음악 감상, 글쓰기, 등등이 있겠지만 그중에서 나는 글쓰기를 택했다. 쓰는 동안만큼은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부족하더라도 완성된 글 한편을 읽고 있노라면, A4용지 위에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낸 예술가가 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쓰면 쓸수록 원하는 소원이 있다. 나와 내 주변 모두가 자신만의 속도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신만의 적당한 속도는 모두가 다르니, 나보다 조금 더 앞서가는 이를 쫓기 위해 무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 또한 자신만의 속도일지 누가 알겠는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에서 고개를 조금 돌리면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이타심도 생긴다. 처음에는  오늘 정돈되지 못한 내 마음을 위한 쓰기였는데 자꾸만 내 글을 기다리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카페인 대신 모두가 자신만의 인생 쓰기에 중독되는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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