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달리 Jun 29. 2024

행운의 사나이


 지인의 주선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간 적 있다. 퇴근 후 집 근처 카페에서 소개받은 여성분을 만났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생머리가 인상 깊었다. 기분 좋은 목소리 톤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헬스장에서 회원을 지도하는 선생님이라고 했다. 


 처음 서먹함을 풀기 위해 공통사슬 찾아가던 중 반려동물과 같이 지낸다는 말에 의자를 고쳐 앉았다. 동물이라고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키우던 토끼, 병아리, 소 외에는 없었는데, 그 사람은 반려동물과 함께 먹고, 잠도 같이 잔다는 말에 더 관심이 생겼다. 스마트폰 사진첩에 따로 이름까지 붙여 정리된 사진을 보면서 반려견 ‘럭키’가 궁금했다. 키는 어떤지, 성격이나 사람을 보면 짖지는 않는지 등등. 궁금증의 꼬리가 길어지자, 내 시선은 스마트폰 속 사진첩에서 나올 줄 몰랐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우리 다음 주말에 다시 볼까요? 럭키랑요!’라는 말에 신이나 대답했다. ‘네. 저야 좋죠!’ 

   

‘키가 작은 소형 개의 일종인데, 코가 뭉뚝하고 눈이 큰 게 매력이에요. 걸을 때 보면 양쪽 귀가 펄럭이는 모습이 꼭 수제빗국에 띄어놓은 수제비 같답니다.’ 딱 그 말이 맞았다. 두 번째 만남은 애견 카페에서 이루어진 덕분인지 일곱 살짜리 천방지축 성격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붙임성 하나는 좋았다. 나는 처음 본 낯선 사람일 텐데도 꼬리까지 흔들며 반기는 걸 보면. 주인 성격 판박이다. 


“왜 이름이 럭키에요?”

“아, 애견 분양 사무실에서 데리고 왔거든요. 제가 며칠을 지나가면서 창으로 봤는데, 매일 엎드려서 힘없이 있었어요. 한 번은 사장님께서 애를 케이지에 담길래 물어봤죠. ‘이 아이는 어디로 보내나요?’ 그랬더니, 공장으로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강아지 번식 하는 곳. 나이가 지나면 안락사시킨다는 말에 그날로 제가 데리고 나왔어요. 죽을 뻔한 걸 구해줬으니 애 이름은 행운이 맞죠. 행운, 럭키.”

“아…….”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 연예의 마침표가 완전히 마르기도 전이었다. 서로 성격 차이는 그렇다 그렇다 치더라도 술 마시고 난 뒤에 돌변하는 탓에 폭력적인 면까지 있어 더 마음 깊어지기 전에 정리했다. ‘더 연예는 마음에 두지 않으리’ 다짐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지금 이 사람은 내 마음을 이해해 줬다.


 주말이면 보통 침대에 누워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매 아침이면 럭키와 함께 산책로를 걸었다. 강아지와 이른 아침, 그것도 직장인에게 꿀맛 같은 주말 늦잠을 포기할 만큼, 이 시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직장에서 앉아있거나 장시간 운전을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피곤함이 늘 친구였다. 그녀와 럭키, 두 존재를 만나고 난 뒤에는 피곤함보단 기분 좋은 에너지가 생겼다. 나아가서는 평일 퇴근한 이후에도 같이 걸으며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는데, 여름에는 지천으로 핀 민들레 꽃 하나에 정신을 빼앗겼다. 산책 줄을 아무리 끌어도 오지 않는 덕분에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럭키의 산책을 기다려줘야 했다. 시작은 내 게으름을 바꾸려고 시작한 일 같았는데, 어느새 럭키를 위한 산책 시간이 됐다. 옆에 있으면서 말도 걸어보고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하루의 피곤함까지 날려 버렸다. 


 당분간은 바쁜 일이 없을 것 같아 저녁 시간에 럭키의 산책을 맡았지만, 곧 다가올 명절에 대비해 늘어나는 택배 물량 때문에 평일은커녕 주말도 반납해야 할 것 같아 앞으로 산책은 무리겠다 싶었다.


 마침내 바쁜 나날이 시작됐다. 하루 한 시간 쉬기도 힘들다. 사실 이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만큼 보너스를 받을 수도 있었고 잔뜩 쌓아놓은 택배 상자를 보며 묘하게 기분 좋은 성취감까지 들었으니까.


 보통 여섯 시를 조금 넘은 시간에 퇴근했다. 일이 일이니만큼 삼 일째 야근하고 집으로 왔다.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두 존재가 보인다. 온몸에 땀과 먼지 가득한데도 멀리 내가 보이지 말자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는 럭키 덕분에 하루 피로가 풀렸다.


 운전 중에 교차로 신호가 노란색으로 바뀔 때는 가속 페달에 발을 댔다. 그래야만 퇴근 후 휴식이 보장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게 급했다. 덩달아 운전 습관도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고도 몇 번 낼 뻔한 적도 많다. 교차로 신호가 바뀌자마자 가속 페달을 밟았을 뿐인데, 자신의 다음 신호를 기다리지 않은 차들의 방해 때문이었다…. ‘그사이를 못 참고 나오냐. 사고 나면 어쩌려고 그래! 운전 참 뭐 같이들 하네’ 말하고도 곧바로 아차 싶었다. 나도 노란색 신호에 멈추지 않았으니 잘못을 따지자면 둘 다 원인인데, 남 탓만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뭐 같이 운전하는 사람 중 하나였을 텐데.     


 럭키와 산책 시간이다. 며칠을 나서지 못한 산책로가 그렇게 좋은지 세상 모든 꽃에 인사라도 할 모양이다. 두 걸음 걷다가 멈추고, 다시 걷다가 멈추고. 이전 산책 시간이 길었지만 기다려줬다. 며칠 동안 이날만을 기다렸을 테니까. 양쪽에서 팔랑이는 수제비를 보며 혼잣말했다. ‘나도 너를 위해 천천히 걸어야겠다.’


 산책 시간이 길어질수록 드는 생각은 종일 바쁘게 운전했던 내 모습이다. 때로는 짜증도 내고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얼굴 붉힐 육두문자도 섞어서 했다. 내일 운전대를 잡을 땐 운전석 앞에 있는 사진 두 장을 보고, 웃고, 출발해야겠다. 핸들의 움직임에 그녀와 럭키, 두 사진이 춤을 출 거다. 나는 분명 행운을 가진 사나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회수 10000!!많은 관심 감사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