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그린 그림.
한참 동안 내 모습을 글에다가 옮기면 어떤 모습일지 고민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평범했으니까. 유명한 사람이나 그런 걸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 중 반 고흐는 36점의 그림 중 34점에 귀를 그려 넣었고, 나머지 2점은 자신의 귀를 잘린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견해가 있었지만 아무도 확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림을 그린 화가 만이 알 수 있었을 테니까.
작게나마 반추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자각'을 이때부터 시작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의 그림을 그리던 그의 삶을 180도 변화시키기 위해 시도한 자신의 노력. 이 하나로 반 고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만난 적 있습니다.
우물 속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도로 돌아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1393,9-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시입니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러다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싫어져 돌아갔다가도 다시와 보니 그대로 있다는 의미에 고맙지만 미안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늘 받기만 했기에 고맙지만 동시에 미안함에 고맙다는 짧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두 사람.
윤동주 시인은 우물에 비친 사나이가 싫어 자리를 떠났다지만, 저는 해가 갈수록 거울에 비치는 30년 전의 한 사람이 자꾸 떠오릅니다. 닮지 않겠다고 거부하며 떠났지만 다시 돌아와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존재.
나를 대신해 날 닮은 또 다른 두 사람을 글에 그리며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