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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Jul 04. 2024

영웅의 옹이



당신이 내쉬는 삶의 마지막 숨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당신의 체온도

손쌀같이 지나간 당신과의 시간도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채웠습니다.


술잔엔 보이지 않는 눈물만 한가득

그런데도 당신의 눈은 멀쩡 했습니다.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채웠으므로.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는 그늘이 되어

차디찬 바람으로부터 지켜주는 벽이 되어

시간이 흘러 텅 빈 고목 되었음에도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채웠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

당신은 다시 아이가 되어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시간의 평행선 앞에선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지나쳤습니다.


외롭고도 무거운 이름을 지닌 등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이 아니었지만

당신의 몸 구석구석 새겨진 세월의 옹이만큼은

모두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채웠습니다. 


먼 길 떠난 곳에서 당신이 기다리는 동안만큼

이곳에 남아 몸에 옹이를 세기며

그늘이 되고, 벽이 되어가며 끝내 고목이 된들

나도, 당신을 따라 채워보려 합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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