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에 바라본 서른은 어린 적부터 상상하던 일 들이 다 이루어져 있을 줄 알았다. 괜찮은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대충의 윤곽은 그려져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이 마흔. 열 계단을 단번에 뛰어 올라온 기분이다. 서른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스물에서의 서른은 낭만이었다면, 지금 바라본 서른은 신발 끈이 풀린 지도 모른 체 달렸던 인생이었다. 그러다 넘어졌고 다시 일어났지만 또다시 넘어지기를 반복한 시간들.
하루를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건, 평범한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기도 했다.
지방의 전문대 졸업장이 전부였었던 나에게 사회는 만만하지 않았다. 미처 보지 못하고 돌 맹이를 밟고 넘어질 땐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만 있는 거지?'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삶은 정말 나한테만 그랬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핑계를 댈 수 있었을 테니까.
17년도의 여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말하고 싶었다. 그 수많은 이야기가 한데 모여 글이 되고, 다시 책으로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어렸을 적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을까?'라는 질문에 어울릴 법한 대답을 찾고 있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로 질문의 모양이 바뀌었다. 그리고는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 한 삶'인지 도 찾아보라 했다.
행복이라는 글자를 수 만 번 썼다. 삶은 나를 붙잡고 쏘아붙였다.
'그래서 행복이 뭔데?'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흰 여백 위 마우스 커서만 시끄럽게 깜박이고 있을 뿐, 더 이상의진전은 없었다.
다시 19년도의 겨울, 마음속 빗장을 열어보기라도 하듯 나의 기억 하나하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일들은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닐터다. 내 이름으로 살아온 1980년도부터의 경험은 한 번쯤은 누구나 겪어봤을 테니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서로 겹치는 아픔 때문에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만의 '나'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 만이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고, 앞으로'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므로.
마치 열등감으로 도배된 삶 같았다.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모습을 꿈꾸는지 모르니, 타인의 삶을 동경했고 욕망했다. 그리고는 그들의 삶을 흉내 냈다. 하지만 어떤 삶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진정한 '나'가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삶의 패착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됐다. '나만의 삶'이 없는 빈 껍데기만 가득한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어버렸다.
유행처럼 번진 취미를 따라 하다가 바닥난 통장의 잔고가 그랬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선택한 삶은 매번 휘청거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나는 남들을 따라 하는 데 혈안이었을 뿐. 결국엔 완전히 무너져 한 줄기 빛 하나 없는 곳까지 빠져버렸다.
꼭 불행은 연이어 온다고 했다. 손쉬운 위로를 기대했던 탓일까, 정신적으로도 피폐함을 이기지 못해 알코올 중독을 겪었다. 나는 그때 찾아냈어야 만 했다.
'내 삶은 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일까?'
나의 침묵 속에 시작된 삶의 침몰. 온통 흙탕물에 적셔진 삶의 무게는 무겁다. 다시 수면 위로 꺼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에, 과거의 시간을 대신해 앞으로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모든 삶의 순간을 진심으로책임을 다할 뿐이다.
아무리 깊고 어두운 터널이라도 빛이 들어오는 작은 틈만 있다면 그곳으로 향해 나아가기만 한다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방황 속에 남겨둔 수많은 일기가 빛이 되어 주었듯, 앞으로의 내 이야기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을 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삶과, 이 글을 읽는 모든 삶에 늘 밝은 빛이 가득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