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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Aug 08. 2024

최고의 의무





여유라는 건, 아무리 더하고 채우더라도 부족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다. 아버지께서 술에 취하시면 입버릇 처럼 하신 말씀이셨다.


오늘 퇴근 후  오랜만에 동료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 한잔 했습니다. 이후에는 물론 대리 기사님을 호출해  집 앞까지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주차뿐. 그런 무슨 일일까, 갑자기 뒤에서 승용차 한 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희 차와 세게 부딪혔습니다.

말 그대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금껏 거의 20년을 무사고를 자랑하는 베스트 드라이버였건만, 그 기록이 깨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도 나의 잘못이 아니라 남의 탓이었으니 마음이 오죽했을까요.


뒤에서 쿵 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기사님과 저는 서로의 얼굴과 뒤를 번갈아 봤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체 당황만 하고 있던 차에,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괜찮습니다. 많이 놀라셨죠?. 우선 내려서 상황을 살펴보실까요?'그땐 몰랐습니다. 왜 그리도 손을 떨고, 안절부절못하는지.


 뒤늦게 해당 기사님께서는 오늘 첫 대리 운전을 시작 한 날이라는 걸 대리 기사 사무실로부터 전화를 받아 알았습니다.


그제야 그 상황이 이해됐습니다. 운전경력이 아무리 많아도 남의 차를 운행하다가 사고를 낸 그분의 떨리는 심정이 어떨지.


다행스럽게도 뒤의 피해자 차량은 큰 사고는 없었고 범퍼 주위가 깨져있길래 우선 많이 다치지는 않으셨는지, 동승자는 괜찮은지 확인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와 보상은 이 것 밖에는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사고처리는 대리기사 사무실과 통화하며 빠르게 일단락 됐습니다. 그나마 크게 다친 사람 하나 없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 수습 후 기사님께서는 저에게  몇 번씩이나 죄송하다는 말과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그것도 아들 뻘 되는 손님에게 말이죠.


그리고는 미안하다며 대리운전 비용을 받지 않겠다는 걸 억지로 주머니에 약속 한 비용에  만 원짜리 한 장을 더 넣어드렸습니다.


그땐 그래야 할 건만 같았습니다. 마음 같아선 떨고 있는 손을 붙잡아 드리고 싶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의무만 다했습니다.


골목 끝까지 사라지지 않는 기사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봤습니다. 힘든 세상을 살지만,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세월의 선배님을 배웅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술 한잔, 대리기사님 한 분 덕분에 나만의 오늘을 가득 채운 것 같은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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