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현기 Aug 17. 2024

30년 만의 동행


소제 :삼촌과 찾은 사찰의 기억.

스토리텔링 :  몇 년 만에 재회 한 삼촌과 보낸 시간.

메시지 : 시련에 맞서는 마음의 방법을 제시.

제목 : 동행



강원도 춘천에는 관광객이 많기로 유명한 사찰 곳이 있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해마다 가을이면 고속도로며, 집 근처를 지나는 도로까지 점령한 차량 들 때문에 알게 됐다. 지은 지 백 년 가까이 되는 사찰이 있다는 사실과, 계절을 따지지 않고 찾는 사람들까지 있다는 것도.


작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지내고 있는 삼촌이 춘천에 겠다연락을 했다. 국내 관광지를 찾아다니며 여행 상품을 기획,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였다. 그런 차에 춘천을 알게 됐고, 마침 내가 이쪽으로 이사 왔다는 소식을 들을 들은 기억이 다고 했다.


몇 년 만에 약속 장소에서 만난 삼촌은 마지막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 삼십 대 시절만 하더라도 여러 사업을 병행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삼촌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나빴다. 얼굴은 주름도 많아졌고 머리도 희끗해졌다.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한눈에 봐도 살이 많이 빠져 보였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목적지로 향했다. 가는 길 삼촌의 차 안에서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삼촌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사업의 연이은 실패, 이혼과 파산. 그 때문인지 부모님과도 떨어져 지낸다고도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예전의 삼촌은 나의 우상과도 같았기에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일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시간을 보냈었으니까.


-도로 위 터널을 지날 때였다. 금방 지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길었다. 창 밖으로 터널 속 가로등이 하나 둘 빠르게 지나갔다.


-출발 한 지 한 시간 쯤되었을까, 곧 목적지에 도착예정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성이 들렸다.

다행히 오늘은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차량 통행도 많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차를 댔다.


주차장으로부터 목적지인 사찰까지는 걸어서 약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안내문을 뒤로하고 삼촌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거의 30년 만의 동행이었다. 내가 어릴 적엔  막내 조카라며 어딜 가든 함께 다녔었는데, 이젠 까마득한 추억이 됐다.


 년 전까지 혼자 배낭 메고 전국으로 '나를 찾는 여행'이라며 돌아다녔는데, 나의 마지막 여행이 언제였는지 기억만 희미했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으면서  점차 떠나는 것보다 오늘과 내일 일을 걱정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당장 오늘이라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감에 직장에서는 야근을 반복했다.

누가 시킨 것도, 강요한 적도 없었다. 단지 나의 욕심이었을 터다. 인정과 잘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원하는 결과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스트레스뿐인 일터에서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몇 년째 승진 발표 명단에서 내 이름이 빠져있는 사실은 더욱더 나를 힘들게 했다. 그동안 후배들의 승진을 뒤에서 조용히 박수만 치고 있으니 괜히 없었던 자격지심까지 생겨났다.


목적지가 보였다. 인터넷에서 이미 정보 몇 가지를 찾아봤던 터라 사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아직 때 이른 가을 이어서 그런지 군데군데 색이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가 보였다.


사찰 입구에 들어서려 할 때였다. 스님 한 분께서 대 빗자루질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래와 흙, 낙엽이 빗질에 뒤엉켜 구석으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스님이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 안으로 걸어갔다. 빗 질을 하지 않아도 사람이 걸어가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지만 스님은 최대한 방문객들에게 피해 가지 않는 정도에서 반복하고 있었다.


빗질에 방해가 될까, 삼촌과 나는 조금 기다렸다가 지나가기로 했다. 마침 반대편 담 끝에 바위가 보였다. 나무 밑으로 그늘도 만들어져 잠시 앉아 쉬기에는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바위에 걸터앉은 삼촌이 물병을 건넸다. 주차장에서 구입한 것이었는데 올라오느라 거의 반쯤 녹아 겉에는 물 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받아 든 물 병을 오른손으로 들고는 입술 한 뼘 높이에서 입안으로 물을 부었다.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의 차가움에 잠시나마 더위도, 나를 괴롭히던 많은 고민도 잊을 수 있었다.


빗질을 멈추지 않는 스님이 잠시 멈추고는 자리에서 숨을 고르는지 하늘을 보는 게 보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 도 스님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봤다. 새 파란 하늘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말 없없던 삼촌이 말을 꺼냈다.

"스님이 왜 빗질을 반복하는지 알아?"

"그야 지저분하니까, 사람들 다니기 편하라고 하는 거 아녜요?"

"그럼, 빗질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나도 어디서 들은 얘긴데, 흙 위에 빗질을 아무리 한들 깨끗하다는 건 각자의 기준이 달라서 그걸 깨끗하다고 볼 수는 없데. 그럼 완전히 깨끗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더라고. 단지 빗질에 밀려 다른 곳으로 날아갔을 뿐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만큼 마음속 불안과 걱정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면 할수록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제자리를 반복할 뿐이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삼촌은 사업에 실패한 이후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난다며 불평 불만만 늘어놨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절을 다니다가 만난 한 스님 덕분에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고.


'마음속 생겨나는 걱정과 두려움을 빗질로 계속해서 밀어내는 빗질 연습을 해야겠다'


더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여기까지 다시 올 수 있었다는 삼촌의 말까지 듣고 나니 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되돌아봤다.

삼촌처럼 죽을힘을 다해 더 열심인 적은 있었는가,  그러다 중간에 포기한 적은 없었는가 하는 등.


스님께서 다시 빗질을 시작했다. 비가 지나간 뒤로 바람이 불어 다시 낙엽 몇 잎이 굴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묵묵히 앞을 향해 빗질을 반복했다. 마치 그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인 건 처럼.


사찰의 곳곳을 둘러봤다.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땐 처음엔  보지 못한 옹달샘을 만났다. 빨간색 물 바가지 한 개가 둥둥 떠있었다. 방문객을 위해 마련해 놓은 음수대였다. 삼촌과 나는 바가지를 떠 나눠 마지고 가지고 온 물병에도 가득 담았다.

우리는 뒤를 돌아 사찰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으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 지금, 힘들거나, 후회하지는 않아?."

"후회? 하루 수 백번도 했었지. 내가 왜 사업을 시작했을까, 왜 준비되지 않았을 때 결혼을 했을까, 왜 부모님께 그렇게 모질게 굴었을까. 등 등. 근데 그런다고 삶이 바뀌는 건 없더라. 단지 내 삶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었던 거지, 계속 후회만 했다면...;"


삼촌은 더 이상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이미 후회보다는 지금, 걸어가는 길 위에 빗질을 멈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나 또한 앞서 배웠으니까.


30년 만의 동행은 하루도 안되어 짧게 끝났다. 삼촌은 다시 서울로 돌아갔고, 남은 건 나와 내 손에 쥐어진 물병 하나였다.


오늘은 아침부터 주말 숙직 근무 중이다. 피곤함을 이겨내고자 냉장고에서 꺼내어 마시다가 남겨둔 물병을 책상 위에 올려뒀더니 겉으로 물 방울이 맺힌 게 보인다. 그날의 삼촌이 건넨 물과, 빨간색 물 바가지에 담긴 맛이 생각나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고의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