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현기 Aug 23. 2024

제철 인생


'올해는 마가 끼었나, 뭐 이리되는 일 하나 없냐. 내년에는 그나마 잘되겠지?'


21년 10월의 일기장에 써놓은 글이다. 글자 하나마다 한숨이 들리는 듯하다. 애써 시간을 들여 문학 공모전에 제출하기 위해 퇴고를 거의 마쳤을 땐 '저장'하고 '제출하기'만 누르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거짓말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분명 노트북 화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저장해 둔 파일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저장하는 중에 파일이 오류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상황에 화가 났다. 그런데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다시, 그것도 수 십장의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다시 퇴고를 진행하는 수밖에.


한 편으로는 초고를 완성하고 오늘의 나에게 전달했을 어제의 나에게 미안하기까지 했다. 동시에 이걸  반복해야 하는데, 이미 시간은 새벽 한 시를 넘기고 있으니, 또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싶었다.


마음 한구석 아린 부분을 애써 누르며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만약 지금의 내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지금껏 해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일이었다. 실제 과거에도  공모전을 준비하다가 중도 포기 한 적이 많지 않았는가.


이 상황에 피곤하고 자시 고를 따질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얼마 남지 않은 공모전 기한 내 마침표를 찍는 것뿐.


힘든 일이다. 눈이 뻑뻑하고 손목이 아프다. 장시간  한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목이며, 허리까지 아픈 날도 많다.


그럼에도 또다시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울퉁불퉁 한 길을 걸어가야 만 글 자체의 읽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평탄하게 성공만을 반복하는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이 글의  마침표를 찍기까지의 에피소드 하나가 더 늘었다는 자랑까지 삼을 수 있으니, 읽는 입장에선 ' 이 글을 쓴 사람도 실수 연발이었구나'  하고 공감을 얻기도 쉬울 테니 말이다.


어쩌면 ' 고생했다'라고 위로의 댓글을 남겨줄 지도.


제철 과일, 제철요리가 있다. 사람들은 삼복더위에는 건강을 위해 보양식 요리나 과일이 있고, 한 겨울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선 또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삶이 꼭 내 마음 대로 되리라는 보장도, 이유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감정 하나, '만족'이다.


제철을 즐기려거든 지금, 나는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나 되돌아보면 된다. 그 일이 어렵게 느껴져 못하겠으면, 혹시 내가 너무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너무 많은 일이나, 목표,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등 등.


재 퇴고를 진행하면서 문맥이 이전보다 훨씬 간결해진 기분이다. 원인 모를 사고(?) 하나로 삶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분노와 고통은 순간이다. 그 또한 제철인 내 삶의 한 순간이고.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지금 나의 의무는 원하든 원치 않았든 간에 또 한 줄 남기며 기록하는 걸 알기에 오늘의 마침표를 찍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30년 만의 동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