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우울해했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지금껏 괜찮던 허리가 아픈 것 같은 기분에 인상을 썼고,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스스로에게 화가 나 씩씩 거린 날도 많았다.
그런 나를 보면서 직장 동료들은 나를 향해 '성격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며 말한다고도 했다.
그 모습이 나의 나이 서른 중반 까지였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직장에서도 빠른 승진을 위해 밤낮 따지지 않고 일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루, 일주일, 한 달,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면서
점차 지쳐갔다. 그걸 사람들에게 나 좀 알아달라고 소리쳤는 지도 모를 일이다.
지방의 이름 한번 들은 적 없는 전문대학 2년제를 졸업했다. 처음엔 대학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바로 취업을 도전했다가, 얼마 못 가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달았다. 많은 기업에서 원하는 최소 학력이 대학교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
스물 초반의 나이,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 뒤로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목표지향적'으로 살기 시작했다.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남들보다 빠른 승진을 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과정에서 휴식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나는, 나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두 눈은 다음 단계를 쫓았다. 모든 건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한 나의 노력이고, 나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남들처럼 술 마시는데 시간과 돈을 마구 쓰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크게 넘어졌다.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실수 한 적, 넘어져 혼자 눈물을 훔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엔 달랐다. 분노에서 자책으로, 그다음엔 좌절과 우울함 뿐이었다.
내 삶을 바꾸게 된 건 언제 남겨두었는지도 모를 SNS글 덕분이었다. 17년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쓰고 있는 중이지만 그땐 달랐다. 기록을 남겨 둔다고 해서 당장 나아지는 것도 없으니 괜한 헛짓 거리라고 생각해 비공개로 남겨둔 글이었다.
life is a journey not a guided tour.
직역하자면, 정해져 있는 여행은 없다.라는 의미다. 말 그대로 인생에 정해져 있는 답이 없으니 내 선택과 노력에 최선을 결과를 남기자는 다짐으로 썼을 터였다.
당시 어떤 심정으로 남겨두었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지만,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던 만은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읽었거나 들었을 영어 한 줄을 남겨두었을 테지.
그 글이 시작이 됐다. 다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한 건, 지금의 길이 당장은 힘들고 의미 없어 보일 지라도 그건 나만의 착각 일 수도 있다고. 시간이 흘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지금이 삶을 여행하는 가장 멋진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기록을 남기는 일에 소홀히 하지 않느냐고. 그때마다 답한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억을 내일의 나에게도 선물로 주고 싶어 쓴다고. 그 시간이 진정한 노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고."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고 이불은 탁탁 턴다. 한 겨울에도 하는 일이다. 베개도 털고, 몇 분간은 그대로 둔다. 자연스럽게 환기가 되면서 방안 전체가 상쾌해진다. 그리고는 이불을 접어 침대 끝선에 맞춘다. 종일 밖에서 있느라 피곤 해할 나를 위해. 남겨두는 작은 선물인 셈이다.
출근길에는 마치 주문처럼 외우는 말도 있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몇 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매일 이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백 개가 넘는 글 감이 모였다.
'나는 원래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원래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기는 사람이었고, 나는 원래 막연한 걱정보다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준비하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지였고, 나는 글 쓰는 일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원래 그렇지 않았어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바로 내 삶의 오답노트이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의 나만의 참고서가 되는 셈이었다.
낯 선 장소로 여행을 떠날 땐 그 지역의 맛집 위치나 가볼 만한 곳을 먼저 찾는 습관이 있다. 아직 걸어보지 않은, 내일이라는 미지의 삶에 두려워하고 있는 나에게 어제와 오늘의 내가 남겨주는 기록이야 말로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매일 쓴다. 바쁜 일상에 지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쓰고, 혹여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도 쓴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매일의 오늘이 남겨둔 낱장의 글이 모여 언젠가 나의 마음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기에, 그렇기에 나는 매일 쓰는 습관을 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