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은 재활용 안 돼요

[100-100글쓰기 29]

by 회색달

오래된 버릇이 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기 전부터 실패를 생각한다. ‘괜히 도전했다가, 실패하면 어쩌지?’ 같은 고민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한다. 나름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차선책을 생각하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의 열어 유튜브에 접속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하는 사람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찾아봤다. 각자마다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극복했다. 노트를 꺼내어 정리했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회사 내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며칠에 걸쳐 준비하고 최종 검토까지 마쳤다. 이젠 같은 회의에 참석할 동료들의 문서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마음처럼 될 리 없다. 미리 정해진 기한은 다가오고 마음은 급하다.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서류까지 내가 하나씩 검토할 수밖에. 덕분에 매일 야근의 연속이다. 나는 노력 중인데 정작 본인들은 ‘나 몰라라’하는 태도에 마음이 쓰인다. 짜증이 났다. 괜히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화살을 날렸다. 그 때문일까, 회사에서 나는 ‘불친절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이 전 담당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많이 도와줬다며 나에게도 친절을 요구했다. 결국, 걱정은 나를 불친절에 묶어 뒀다. 후회됐다. 완벽을 꿈꾸다가 불행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22년 한참 아파트 신규 분양이 유행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안 될 것 같아 남들 따라 여기저기 청약을 넣었다. 운 좋게 당첨됐다. 주변에서는 난리였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텐데 대출금을 감당할 수 있겠냐’와 ‘축하한다. 대출은 알아봤느냐?’ 두 갈래로 나뉘었다. 차라리 각자 축하한다는 말만 해줬더라면 좋았을 것을 오지랖 넓은 남 걱정에 내 걱정이 늘었다.


처음엔 내 명의의 아파트를 가지게 됐다며 기분이 들뜬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일주일이 않겠다. 경제 뉴스에 관심을 둔 것도 이때부터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외국 경제 동향과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 그에 따라 달마다 바뀌는 금리 소식.


문제는 입주하기 한 달 전쯤부터였다. 모아둔 현금이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알아봤다. 분명 계약일까지 잔금 2억이 이상 없이 입금될 것이라 장담했다. 나 역시도 별문제 없을 거라 자신을 다독이며 새 아파트의 삶을 기대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DSR 계산이 잘못돼서 희망하신 전액 대출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쌍욕을 하고 싶었다. 육두문자를 날려서라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야 하겠지만 담당자가 무슨 죄인다. 상황이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황스럽긴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그럼 차선책이라도 제공 해주실 수 있는 거죠?”. “네. 금리가 조금 더 높긴 하지만 부족 금액을 우대 금리 적용하여 안내하겠습니다.”


말은 좋게 했지만,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대출이 안 나오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프리미엄 받고 팔아야 하나?’ ‘부족 금액은 다른 곳에서 빌려볼까?’. 직장에서의 2차, 3차 계획 습관이 일상생활까지도 연결됐다. 은행에서의 다음 연락을 받은 건 그로부터 일 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 사이 거의 밤잠을 못 잤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저희 업무 착오가 있었습니다. 희망하신 대출은 전부 승인되실 겁니다. 다시 한번 마음 쓰이게 하여 죄송합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건만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허탈했다.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그 마음고생 하며 자신을 괴롭혔는지 헛웃음까지 났다.


사실 두 가지 모두 지금 와서 돌아보면 ‘별일’ 아니다. 그 별일 아닌 일에 혼자 끙끙 앓으며 보낸 시간을 세어본다면 아마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았을 터다. ‘프로 걱정러의 삶’ 이랄까.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지 2년째다. 글쓰기 생활과 함께 생긴 습관이 있다. 기록한다. 매일 30분 이상은 반드시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 노트북과 씨름한다. 여의치 않을 땐 스마트폰을 꺼내어 엄지 두 개로 쓴다. 기록은 행동이 전부다. 환경은 문제 되지 않았다. 쓰다 지우기를 반복한 흔적이 24년도에만 400편 이상의 글이 됐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든 또 다른 나다. 시간보다는 순간적으로 집중하며 흘린 땀방울의 무게가 늘어 이룬 결과다.


그중 내가 유독 애착 갖는 기록이 있다. ‘걱정’, ‘태도’, ‘버리기’ 다. 직장에서 밀려드는 업무에 하루가 짧다고 느껴질 때, 정확하게 정체 모를 걱정이 밀려들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더 많이 적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정말 내가 걱정할 일인지를. 나는 이 과정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감정 재활용’ 시간이라고.


지금 드는 생각, 감정이 내일의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재활용을 거쳐 도움 될 수 있도록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눈에 보이도록 써놓고 실제 나를 뒤 흔들만한 일인가 검토해보는 일이다.


재활용에는 법칙이 있다. 하루에 있었던 일 중에서 내 의지로 할 수 없었던 일 하나를 골라 자정이 지나기 전에 쓰는 것이다.


깨닫게 된다. 불필요한 생각을 많이 했다는 걸. 그리고 선명해진다. 부정적인 생각이 걱정을 만들어 내고 걱정은 나를 망치게 된다는 걸.


고민과 걱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손바닥 뒤집듯 하면 고민은 걱정이 된다. 하지만 고민은 해결할 수 있다는 태도로 생각의 점을 찍어가는 과정이고 걱정은 점점 나의 삶 전체를 무겁게 만드는 불필요한 시간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상황을 타개하기로 했다.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도 하루는 벅차다. 불필요한 일까지 생각하며 보내기엔 삶은 짧다. 그걸 깨닫는 과정이 걱정 버리기 연습이라 생각한다. 반복할수록 삶의 환한 부분이 많아 질타다. 그걸 알려준 인생 선생님이 ‘태도’라는 말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글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