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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발질

실패에 지쳐있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by 회색달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나이 서른아홉과 마흔을 동시에 경험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법이 바꿔야 한 번 더 30대를 누릴 기회가 생겼다. 공짜로 한 살 어려진 해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의 20, 30대는 어땠는지 떠올려봤다.


20대 중반부터 입사한 직장 생활은 순탄했다. 남부럽지 않았다. 한 번도 밀린 적 없는 월급에 감사했고 열여섯 해 동안 그래왔다.

그에 반해 고향 후배는 개인사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전쟁이란다. 특히 직접 실내 장식 주문을 받고 인부들과 팀을 이루고 있는 그와 전화 통화할 땐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쉰 적이 없다.’라는 말을 자주 다.

그러니 나는 직장 생활하면서 월급의 달콤함을 누릴 수 있고, 매일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도 나와 행복은 서로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행복은 고민과 함께였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나도 남들처럼 외제 차를 운전해 볼까?',‘돈을 많이 모아볼까?',‘뒤는 생각하지 말고 며칠 여행을 다녀와 보면 어떨까?’ 하는 의문형의 고민.

늘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정답을 찾기 위해 방황했다.

쉽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이 좋아 보이면 따라 해보기도 하고, 조금 더 집중한 적도 많다.

문제는 그럴수록 행복에서 멀어진다는 것. 남들 하는 데로 따라 했으니, 만족도는 높을 리 없고 원하는 결과가 따르지 않을 땐 낙담도 했다.


서른의 중반, 알코올 중독을 경험했다. 세상에 수없이 내지른 헛발질의 결과다. 그동안 나름대로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에 노력 했건만, 현실은 헛발질 이었다.

내 헛발질을 위로받고 싶었다. 어디에 툭 터놓고 마음 편하게 말하고 싶었고, 내 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 묻고 싶었다.

손쉬운 위로가 될 만한 장소가 있었다.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기만 하면 온갖 스트레스가 풀렸다. 술 마실 수 있는 곳, 이 외에는 없었다.

매일, 몇 달 넘게 드나들면서 탈이 나기 시작했다. 몸에 담배 냄새, 술 냄새에 찌들었다.


한참 동안 성장통을 겪은 뒤에야 제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또 다른 위로 덕분이었다. 그건 바로 여행.

바쁜 일상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여행은 늘 새로움을 제시했다. 좌절과 후회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나를 잊게 했고, 동시에 또 다른 나를 세우는 데 역할을 했다.

한 참 여행을 다니면서 단순 기분 좋은 일, 해내고 나면 행복할 줄 알았던 일에서 벗어나 나와 친하게 지내는 연습을 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하는 식의 질문을 만들어 끊임없이 던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안을 진열 역할만 하던 책과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을 정도로 넘치는 옷까지 나에게‘덜 필요한’ 짐을 정리하는 연습을 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무작정 비우는 일이 아닌, 내 삶에 필요한 관계인가 하는 단순한 질문에서부터, 그 외에는 오로지 ‘비워내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있었다. 남의 행복을 동경하여, 쌓여버린 ‘불필요한 관계’가 많았다. 어쩌면 이 관계는 남들과 비교로 시작되어 끝나버린 ‘열등감’의 흔적은 아니었을까?. 내 삶의 헛발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겉으로 포장된 화려함에 속아 나의 진정한 행복은 외면한 채 말이다.


전국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유독 바다를 자주 다녔다. 처음 딛는 땅, 낯선 공기 앞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 나는, 앞으로는 행복을 좇느라 속도를 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로 했다.


제주 둘레길 길가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들꽃을 볼 때면, 잠시 쉬기를 선택했고, 가방을 내려 자리에 앉았다. 바다의 노을 앞에서는 더했다. 하늘을 침대 삼아 길게 누운 해를 볼 때면, 이전까지 없었던 습관까지 생겼다. 감탄과 감사였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해와 구름, 바다까지 이 모든 하모니를 볼 수 있는 순간이야말로, 나는 지금 최고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며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10년 전의 오늘, 20 대를 보내던 나는, 다음 세기를 기다리며 설렘과 기대, 걱정과 불안이 한데 섞여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지만, 비로소 헛발질의 의미를 배운 뒤부터는 내 삶 자체를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중요한 건,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나의 마지막 삼십 대를 보내면서 새로운 마흔의 시대가 기다려진다. 서른의 반열에 오르던 그날의 설렘을 다시 만들어야겠다.

집 근처 카페에 앉아 글을 수정하는 중인데, 마침 오늘의 해가 지고 있다. 이 녀석도 아쉬움이 많았나 보다. 카페 안으로 깊숙히 노을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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