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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도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 이혼과 우울증, 대인기피, 알코올 중독, 공황장애를 겪다 내린 극단적 결론이었다. 한 여름밤 불 끄면 다시 나타나 괴롭히는 모기 같았다. 어둠 속 양손을 휘둘러도 다시 들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 삶은 고통이었다. 아침이 싫었다.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았으면 했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가, 5분 뒤로 맞추고 다시 누워 직장에 늦은 적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떠올리기 싫은 기억뿐이다. 그런데도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나는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
삶을 무엇인가에 비유하자면 바다의 해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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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왔다가 멀어지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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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하얀 물거품을 내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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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시원한 바람을 데리고 와 더위를 식혀줄 때도 있고 먼바다에서 태풍을 만들어 가까이
다가와 물난리를 겪게 할 때도 있다 바람과 파도와 거품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벽한 것 없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 또한 없다. ‘역대 최고 수위의 태풍’이니, ‘안전에 각별에 유의 바란다.’라며 각종 뉴스에서 호들갑을 떨어놓고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적 많지 않은가.
‘죽고 싶다’ ‘살고 싶지 않다’라며, 세상에 악쓰며 지냈던 시간도 지나고 보니 아무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황당하고 기분마저도 또렷하다. 바다와 삶,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단지 밀려오고, 밀려 나가기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대신 그 자리에 흔적 하나씩 남겼다. 바다에 가득 담긴 하늘의 노을이라던가, 눈물과 다짐이 담긴 하루 말이다.
어디론가 떠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도망치듯 선택한 곳이 제주도였다. 유난히 이곳의 바다가 좋았다. 가만히 앉아 파도만 보고 있어도 방금까지의 고민이나 걱정은 별일 아니게 됐다. 17년도에는 일곱 번을 다녀왔다. 기억나는 일이있다. 공항에서 내려 숙소까지 차를 운전하는데 사려니숲길을 앞을 지나야 했다. 제주도 날씨를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방금까지만 해도 맑았던 제주도 하늘은 금세 먹구름으로 가득 차 빗줄기를 쏟아낸다. 그날도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에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얼마나 지났을까, 반대편 차선에 사고 난 차를 발견했다.
빗길에 미끄러졌는지, 비탈길까지 밀려나서는 옆으로 뒤집혀 있었다. 속도를 줄였다. 오가는 차는 없었다.
‘내려야 하나? 내가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괜히 오지랖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고 난 차량으로 가까이 운전했다. 손 하나가 창밖으로 나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봤다. 고민은 그만뒀다. 차에서 내려 사고 차에 뛰어올랐다. 사람 손을 잡고 위로 끌어올렸다. 안에는 어린아이 두 명이 더 있었다. 순서대로 나머지도 구호했다. 아이 한 명은 입술에서 피가 나 수건으로 응급처치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것보다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는 편이 빠를 것이라는 판단에 모두 차에 태웠다. 그 상황에서도 비는 아직도 쉬지 않고 내렸다.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 처음 구조된 사람이 말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었어요. 순간적으로 저희 모두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차에 거꾸로 매달려 있더라고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생명의 은인입니다. 감사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차마 처음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용기가 나질 않아 망설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형편없는 삶이라고 여겼던 나였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라고 생각했다. 은인이라는 말에 기분이 묘했다. 누군가에게 도움 됐는 사실에 가슴 뜨거웠다.
태풍 같았던 시간이 지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내 삶은 맑아졌다. 삶은 내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이별과 아픔, 죽을 뻔한 고비까지 넘기면서 버티면 살아진다.
운명적 파도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버텨대는 것이다.파도 하나씩 버티다 보면 죽을 만큼 힘든 순간도 나의 소중한 삶의 일부로, 친구가 되지 않을까. 그토록 밉고 버거운 삶도 소중하다. 나는 그 삶을 살아낼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는다.힘들 땐 하루만 버텨내기로 했다. 딱 하나의 파도만 버텨내면 또 맑은 내일이 오리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