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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의미

새롭게 보는 연습

by 회색달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원했다. 집으로부터 두 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기도 해서 잘됐다 싶었다. 명절에도 집에 가는 것보다 여행을 택했다. 지갑은 가벼웠지만 대학교 수업이 없을 땐 단기 알바를 통해 여행 자금을 마련했다. 전국을 버스 타고 다녔다. 하루 1만 원짜리 게스트 하우스에서 잘 때도 있었고 찜질방은 단골이었다. 다음날 대학교 수업이 있을 땐 심야 버스 타고 올라온 날도 있었다. 유명 관광지나 맛집을 찾아다닌 적은 없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순간이 좋았을 뿐이었다.


직장에 취업한 뒤부터는 제주도를 자주 찾았다. 금요일 저녁 퇴근길 갑자기 제주도 바다가 보고 싶을 땐 스마트폰으로 저가 항공편을 검색해 바로 떠났다. 대부분 20대 때의 기억이다. 매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

이번이 끝’이라고 하면서 나를 붙잡았건만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생활에 묻혀 있다 보면 떠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허기졌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밥도 많이 먹어봤지만 그때뿐이었다.


다른 도전을 해봤다. 남들처럼 자격증 공부, 어학 공부, 4년제 졸업을 위해 편입학 준비 등.


도전 성공을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만 뒷받침될 수 있다면 가능성은 높아진다. 노력이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꾸준하게 하면 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막상 다짐했었던 일, 목표를 하나씩 해결하자 급격하게 공허함이 밀려왔다.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몇일씩 바다 위에서 서핑보드와 뒹굴어도 막상 집에 돌아오면 즐거움보다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떠나고 돌아오고 다시 떠나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이었다.


제주도 제일 남쪽에 위치한 항구에 왔다. 작은 포구다. 이미 몇 번째 방문했던 곳이다. 낚싯배 몇 척이 전부다. 흔한 공판장하나 없다. 그러니 관광객도 없다. 적막함에 가끔 하늘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 몇 마리가 이곳이 바다임을 알려줬다. 찾은 이유가 있다. 딱 그만큼만 내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다. 이곳에서는 포구에 대충 걸터앉아 바다를 봐도 온전한 여행이 된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땐 여행자로 왔지만 자주 오니 짐이 줄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도 나를 알아본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둘레길이 있었다. 길이가 짧아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았다. 덕분에 바다와 하늘과 길을 혼자 전세 냈다. 특히 둘레길 표지판 근처엔 무인 음료함이 있었는데 마을 주민과 숙소에서 마련해 놓은 선물이었다. 여행객이 가져가기도 하고 자신의 선물을 담아 두기도 했다. 무료인 것도 그렇지만 자기 것을 베푸는 여행객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제주도 날씨는 변덕이 심했다. 한 낮인데도 내가 있는 곳은 짙은 안개와 비까지 내리는가 하면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엔 해가 쨍쨍했다. 일회용 우의 입고 길을 걸었다. 걸을 만했다. 약한 바람이 땀을 식혀줬다. 마침 안개가 조금씩 걷히면서 바다 멀리 범섬이 보였다. 하늘엔 구름 사이로 해 한 줄기가 쏟아졌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켰다. 만족스럽게 찍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하고 확대도 해봤지만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한 참을 자리에 가만히 서서 광경을 쳐다만 봤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생각을 자주 했다.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낯설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경험이 좋았다. 직장 생활하며 시작한 겨우 1박 2일의 여행일 때도 순간을 놓칠 수 없다며 고가의 DSLR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다. 여유 배터리와 삼각대는 필수였다. 렌즈도 2개 이상은 필수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여행 사진작가 흉내나 내는 어설픈 사람으로 보였을 터다.


여행의 빈도가 늘수록 짐이 줄었다. 며칠씩 여행하더라도 기능성 옷을 입으면 저녁에 손 세탁해도 밤사이 충분히 말랐으니 충분했다. 카메라대신 스마트폰과 충전기 하나, 가끔 기록이 필요할 때 쓸 손바닥만 한 수첩과 볼펜 한 자루가 전부였다. 어디든 쉽게 다닐 수 있었고 또 가볍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가벼워고 나서부터는 여행을 떠나는 빈도가 줄었다. 더 쉽게 자주 떠났을 만도 했지만, 부족하게만 느껴졌던 삶이 오히려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공허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새로움과 자극만을 쫓는 갈구였고, 과정에서 얻는 도파민 중독이었다. 특별함이란 경험 덕분이었지,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개 너머 바다 위 햇살 한 줄기 비친 범섬의 모습처럼 나와는 상관없이 자연은 늘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매일 똑같아 보이기만 했었던 내 삶이었지만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조금씩 변화고 있었다. 가을 아침 출근길 위에서 볼 수 있는 가로수의 낙엽이라던가, 퇴근길 강변에 늘어지는 오늘의 석양 등을 바라보는 나의 기분이나 태도 등 등.


어렸을 땐 현관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모든 세상이 최초의 경험이었다. 매 순간이 모험이었고 새로운 일을 겪으며 지루함을 몰랐다. 모두가 그랬을 터다. 어른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변했다. 매일 아침 일터로 가야 하는 의무감에 하루를 보냈다. 모험 대신 익숙함을 선택했고,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삶은 그대로였다. 내가 변한 것이다. 여행이란 낯선 곳에서 새로움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눈을 갖는 연습하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여행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Nowhere’와 ‘Now here’의 차이를 예로 든다. 직역하자면 각각 ‘어느 곳에서도’와 ‘지금, 여기’라는 의미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곳에서 여행하기를 꿈꾸지만 정작 평범하게 살아내는 하루에서는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행복은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없다면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매 순간을 어른의 눈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여행자의 눈’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건 어떨까? 어렵겠지만 매일 하나씩 찾아내기만 하면 삶은 특별해질 것이고 길 위에서 방황하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몇 줄에 그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감정을 올려둘 수는 없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매일 ‘행복하다’라는 말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으리라 본다. 유독 행복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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