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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라테.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어제의 눈물이 오늘의 환희로

by 회색달

* 직장 문제로 (지방 출장) 인하여 잠시 집을 떠나 있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다시 글을 남깁니다.




과거의 일 때문에 오늘이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의 노력으로 내일이 바뀌는 것이 삶이다.

- 나달리-




모처럼 만의 휴무다. 그런데도 알람소리가 울리기 전에 잠에서 깼다. 평소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 인지 느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옆 지기의 때문에 집안이 시끌하다.


"오빠! 점심시간 비워놔요. 시간 맞춰서 점심 먹게!"

"알았어!"

짧은 대답을 다 하기도 전에 현관문이 닫혔다. 얼마나 급했는지 방금 까지 신고 있던 실내화 한쪽이 신발장 앞에 벗겨져있다.'바쁘면 다 그렀지 뭐'.

부부는 자주 싸운다. 화해도 자주 한다. 양말 한쪽 뒤집어 놓아도 싸운다. 처음엔 이해 안됐는데 밤늦도록 일하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고생했어' 라며 등 한 번 두들겨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조용히 뒤집힌 양말을 바로 했다. 꼭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도 사랑의 한 표현이니까.


창문을 활짝 열었다. 9월의 첫 금요일. 파란 하늘이다. 구름 몇 조각이 멀리 고층 아파트에 걸려 발이 묶였다. '이런 날엔 조용한 바닷가 이 가서 쉬고 싶은데....' 욕심이다.

밀린 집안일이 우선이다. 쌓여있는 책이며, 몇 일째 켜놓은 노특북은 또 어떻고. '그만 놀고 앞에 앉아 마무리 좀 짓지 그래?' 라며 묵언의 시위 중인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나와 약속한 하루다. 출근하지 않는 날. 하지만 쉬는 날은 아니다. 너무 빠르게 흘려버린 일상을 억지로라도 잡아놓고 싶은 마음에 정한 다짐. 오늘이 그날이다.

밀린 빨래도 하고 침대밑 먼지도 청소기의 힘을 빌려 정리한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안방 창으로 보이는 그날의 하늘을 감상한다. '오늘에 내가 있구나'라고 충분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꼭 평일을 선택하는 이유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바쁜 일상에서 혼자만 느낄 수 있는 여유의 크기를 자랑할 수 있어서랄까?. 특히 오늘 같이 아침 일찍 출근하는 옆지기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희열까지 느낀다. 이때만큼은 부자가 된 기분이다.

보통 회사원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선다. 퇴근도 늦다. 그러다 보면 베란다 창밖 볼 겨를도 없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선택한 이유가 창 밖 풍경이었다고 말했던 내가 무색해진다.

10년 전 일이 생각났다. 다른 인사부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너 한번 해볼래?'라는 권유에 못 이긴 척 맡게 된 일을 두 해동안 했다. 다들 꺼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인 만큼 보람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호기롭게 도전했다.

일이 힘들 것이라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전화응대에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 수없었다. 출근하자마자 모니터 밑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의 전달사항을 처리하는 데만 온종일을 쓰느라 점심도 못 먹은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해보겠다고 한 일을 중간에 포기할 수도 없는 일. 꾹 참고 버텼다.

일할 땐 벽을 등지고 하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책상배치를 바꿨다. 그동안 쌓인 서류 뭉치는 작은 선반을 놓고 정리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꼭 빨래통에 담아놓은 빨랫감이 넘쳐흐른 모습이랄까.

처음 이곳에 왔을 땐 겨울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봄이 됐다. 계절이 바뀐 걸 알 수 있던 건 출퇴근 길 양 옆으로 난 개나리 덕분이었다. 하얀 얼음 꽃 대신 노랑꽃 방울이 맺혀 있는 걸 보고 나서야 봄이 왔구나 싶었다. 창 밖 풍경도 한 몫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등진 벽에 사무실의 유일한 창문이 있었다. 2층 건물의 낡은 외관이었지만 내부는 깔끔하게 수리 한 덕분에 창문틀만큼은 깨끗한 흰색이었다.

"사무관님!. 봄은 봄인가 봅니다. 창 밖좀 보시죠."

"예?. 무슨 일 있습니까?"

아침부터 몇 시간째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동료의 제안에 몸을 돌렸지만 보이는 건 흰색 벽뿐이었다. 창 밖을 보려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야했다. 바지가 허벅지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와.! 진짜네요. 대리님. 저 멀리 벚꽃까지 보입니다."

날씨 좋은 날엔 창 밖으로 대관령과 산 꼭대기에 풍차가 보일 정도로 둘 사이엔 가로막는 건물이 없었다.

사무실을 옮긴 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대관령 옛길이라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저곳 정상에 오르면 우리 회사 건물이 어렴풋이 보이기도 했다.

1층 사무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종종 '우리 사무실 뷰가 최고야, 대관령 자락을 그대로 볼 수 있다니까.' 라며 농담을 할 정도로 풍경이 좋았다. 남들은 힘들다며 기피하는 일을 2년 동안 매진 할 수 있었던 것도 풍경의 힘이 컸다. 창 틀에 기댔다. 저 먼 곳과 겨우 한 걸음 가까워졌을 뿐인데, 방금까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무너진 기분이다. 그만큼 손에 잡힐 듯 봄이 선명했다. 생각했다. 이 풍경을 한 번쯤 사진으로 담아놓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당시 써놓은 일기장에 남아있는 몇 줄의 문장으로 그날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었다. '등을 돌리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곳. 나는 이곳을 벽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부터 이곳을 세상이라고 부르겠다. 지금까지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켜주었으니까.' 그만큼 그곳의 창 밖 풍경은 매일 스쳐가는 하루를 처음으로 느리게 만든 장소였다. '시간이 참 빨라.'라고 말한들 느리게 가지 않는다. 방법은 그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놓치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뿐. 한탄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졌다. 평소 끄적이던 몇 줄을 조금 더 길게 써보기로 했다. 영화, 드라마, 노래에서 만난 인상 깊은 문장에 살 을 붙였다. 문장 수집, 성실한 기록의 연속. 내가 남기지 않으면 매일 같은 일상 중 뻔한 하루의 반복이고, 익숙해질수록 소중함으로부터 멀어질

테니.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공감을 배워보고 싶었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 손 붙잡고 서로가 좋아하는 장소에 걸어가는 일까지, 모두 공감의 한 방법이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옆 지기가 물었다.

"오빠, 여기 봐. 우리도 이거 할까?"

사회 나눔 프로젝트가 일환인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를 안내문이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던 옆 지기의 손 끝을 따라 몇 장의 '맡겨놓은 쿠폰'이 눈에 띈다. 평소에도 '나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옆 지기의 마음을 알기에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청소년을 위한 거니까 초코라테 열 잔으로 하자."

"그래. 그러자"

점원의 안내에 따라 무기명 쿠폰을 받아 기증자의 이름을 적어놓고 음료 이름과 간단한 인사말을 남겼다.


'따뜻한 초코 한 잔에 미소를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없이 글 쓰다 보면 한두 시간이 손 쌀 같다. 매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일인데 어떨 땐 손해 보는 일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도 글 쓰는데 멈추지 않는 이유는 매일에 숨겨진 재미가 있어 손으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눈으로 담아 온 세상을 좀 더 멋지게 글로 옮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래도 어떤가. 오늘은 옆지기와 또 다른 세상을 그려봤으니 그만하면 된 거지. 내가 좋아하는 건,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같이 나눴으면 좋겠다. 남을 위한 마음 하나로, 모두의 하루가 빛 나 보이도록.



22.9.2일의 기록을 퇴고하여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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