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겨울 처음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의 권유로 참석하게 된 모임이었다.'내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동안 약속 장소에 사람들이 하나 둘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나가고 나니 내가 올 곳이 맞나 싶었다. 무엇보다 나이대가 이십 대 초반이 모여있었다. 어림잡아도 나하고 열 살 이상씩 차이가 났다. 참석자는 일곱 명.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나를 비롯해 대학을 다니는 학생 다섯 명과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대학원생까지 한 데 모였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 곧 나이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에겐 '독서'라는 의미가 책을 읽는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수식이 없었다. 그만큼 필요하면 더 자료를 찾기 위해 읽었으면 읽었지, 누군가와 읽은 책을 읽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이 차이도 이렇게 많이 나는데, 괜히 내가 전하는 말 한마디에 '꼰대'로 비칠까 불안했다.
사실 직장 내에서도 선배 중 몇몇은 주변 후배들에게 꼰대로 불렸다. 본인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지, 간간이 내뱉는 말이나 행동 하나에 그를 뒤따라야 하는 후배들은 실망감만 안았다.
그런 모습을 보아왔으니, 나도 다른 이들에게 꼰대의 모습으로 남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뿐. 이건 단순한 노파심이라기보다는 확신에 가까웠다. 그만큼 나이 차이는 세대별 격차를 느끼게 만드는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에서 스스로는 그걸 어떻게든 깨보려 시작한 일이 독서였다. 주변 사람에게 말 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나'보다는, 필요하다면 도움이 될만한 참고서로 책을 권했다. 그 외에 독서 관련 활동은 없었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 수 백 페이지의 글을 읽는 것도 벅찬데 그 걸 어떻게 다 읽고 요약까지 해서 소감을 나누라는 말인가. 또한 독서 자체와 사람들과의 대화는 엄연히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독서는 작가와 나와 연결되어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소리 없는 대화고, 모임에서 하는 대화는 어찌 되었든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어야만 했으니까.
더군다나 말 수가 적은 내가, 책을 가까이하면서 더 심해졌으니 어찌 보면 모임은 내 관심 밖의 일일 수밖에.
그런 내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모임에 참석한 첫날, 모임 작이라고 소개한 한 여성분의 인사말이었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잘 지내셨나요?.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모여 나누는 독서모임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 저는 동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나이도, 직업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읽고, 같이 앉아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으니까요."
순간 말을 잃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의 대화였던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 없었다. 작은 체구였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 담긴 힘만큼은 나보다 훨씬 강했다. 모임은 매주 다른 책을 선정 후 다음 모임 전까지 읽어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일주일이었다.
토요일에 진행되므로 월요일부터 금요일 사이에 혹시라도 회식이 있거나 깜박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토요일이 눈앞에 와 있을 수도 있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길게 느껴질 것이고, 누군가에게 쏜살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불행하게도 나에게만큼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체감상 절반도 안 됐다.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각이었고 동료들과의 달콤한 회식 유혹은 뿌리칠 수 없던 결과였다.
토요일 아침 이면 전날의 흔적으로 쌓인 숙취 때문에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나였지만, 모임에 참석하면서부터 금요일 회식은 자제, 혹은 최소한의 참석으로 바뀌었다. 일주일 동안 읽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라도 읽어야 하는 책임감과 같은 마음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작은 설렘도 한몫했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 집단 모임이 불가능 한순간이 왔지만, 21년도에는 온라인으로 장소를 옮겨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뒤로도 세 번의 겨울을 책, 사람들과 함께 보냈다. 사실 그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 기억을 떠올리면 제목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수록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하나.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 있었기에 아픔과 슬픔을 덜고, 기쁨과 즐거움을 배로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모임이 진행될수록 누군가는 진로에 대한 고민, 또 누군가는 가족과의 불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느꼈던 아픔 때문에 남은 공허함을 채워주길 원했다. 때마침 나 역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고 말의 어깨를 내어 기댈 수 있도록 해줬다.
그동안의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차가운 종이에 자신의 체온을 빼앗긴 나머지 오히려 나만의 따뜻함을 잃었던 건 아닐까?. 수많은 전공서적, 자격증, 수험생 시절 속에서 말이다. 그걸 깨우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동행이라는 독서 모임이었고.
매주 달라진 책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던 우리는 모든 글과 말의 속에서 그동안 혼자라고 느껴졌던 길 위에서 조금씩 곁을 채워 나갔다. 마지막 모임만큼은 기억이 생생하다. 긴 시간 동안 이어온 것에 비하자면 마지막은 조촐했다.
중간에 모임 대표가 된 나와, 대학원생 한 명, 얼마 전 교원 시험 합격을 자랑하던 스물여섯 살의 여대생까지 셋.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의 삶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던 말과, 앞 길을 응원하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서로의 등을 배웅했다. 이제는 비록 과거의 내 독서 활동에 남은 기록에 지나지 않지만 함께 길을 걸었던 우리에게는 평생토록 빛 날 길잡이가 됐다.
독서를 하는 순간 사람에게는 두 가지 빛이 난다. 하나는 내가 책을 읽는 순간 빛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책을 읽고 나누는 순간 상대의 마음에서 빛나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다. 삶은 혼자 걷기에는 힘이 많이 든다. 그걸 옆에서 밀어주고 끌어주며, 말동무가 되어 함께 간다면 조금이라도 발걸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그것이 동행의 힘이다.
다음 주에는 새로운 독서모임에 참석할 예정이다.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이 많다. 낯선 이들과 새로운 길을 걸을 생각에 설렌다. 과거 19년도의 코로나로 맺어진 동행자처럼 천천히, 들어주고 함께 걸아봐야겠다. 문득 그때의 얼굴들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