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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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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달

일요일 오후 세 시를 조금 넘었을까요? 갑자기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손발이 갑자기 차가워짐을 느꼈기에 이거 또 올 게 왔구나 싶었습니다. 환절기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몸살이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증상이 하나 있었습니다. 노로바이러스에 걸렸을 때의 증상이더군요. 약국에 들러 상황 설명을 했더니 특별한 약이 없고 해열제와 근육통을 줄일 수 있는 약을 먹고 푹 쉬라는 말만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월요일까지 쉬는 날이었으므로 지금부터라도 얼른 약을 먹고 회복하길 비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누웠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3번이나 걸렸었지만 이렇게 아픈 건 또 처음이었습니다. 한 두 시간 사이로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들락거렸습니다.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몸에서 열이 났습니다. 새벽, 응급실을 가볼까 하다가도 요즘 의료 대란이라 뭐다 하여 환자 진료가 원활치 않는다는 말을 들었기에 포기했습니다.


잠시 핸드폰을 열어 채팅방을 확인했습니다. 공저 작업팀을 비롯해 출판사에 가입된 채팅방, 그 외에도 대부분이 출간과 관련된 채팅방뿐이었습니다. 거의 한나절을 확인하지 않은 탓에 메시지를 확인하려면 한 시간은 읽어야 했습니다. 미진한 체력 탓을 하며 공저 채팅방에만 접속해 확인하자며 자신을 격려했습니다. 오후에 내 상태를 잠시 알렸더니 걱정과 회복을 기원하는 연락이 많았습니다. 다들 자기 몸처럼 걱정해줬습니다. 팀장을 맡고 있어 계속해서 공저 작업에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마음 단련용 용기와 격려를 해드렸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팀원들로부터 힘을 받고 있었습니다.


월요일 밤 9시. 조금 회복됐습니다. 어제 잠시 쓰다 만 글을 다시 꺼내어 살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출판사와 전자계약을 마친 뒤였으므로 본격적인 퇴고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간이 처음인 예비 작가도 있었습니다. 경험상, 출판사의 날 선 피드백을 받다 보면 ‘지금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후회가 들은 적 있었기에 팀장으로 꼭 들려줘야 할 말을 적기로 했습니다.


‘돌 위에서도 3년’이라는 말은 일본의 속담 중 하나로 아무리 차갑고 단단한 돌일지라도 3년을 앉아 있다 보면 체온만큼 따스해진다는 말입니다. 오랜 시간 반복하다 보면 그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 세상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해 신규 도서를 검색하면 하루에도 수십, 수 백 권의 책이 새로 출간됩니다. 독자일 때는 읽기만 하느라 몰랐는데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작가의 고충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장의 연결에 몇 시간 동안 씨름하는 일은 보통이고 마감일에 쫓기다 보면 현생의 나와 헷갈리는 날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과정의 고통보다는 마지막 순간의 희열에 더 큰 기대를 했었으니까요. 마침표 하나를 찍는 날이면 마치 삶이 ‘리셋’ 되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퇴고는 고치고 다시 쓰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내 삶, 그동안 우당탕 걸어왔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후회와 반성, 다짐과 기대로 한 줄, 한 페이지를 묵묵히 쌓아가는 기간입니다.


2년 전 지금의 보금자리에 이사 올 때 장만한 중고 의자가 저번 달부터 삐걱거리더니 결국엔 팔걸이 한쪽이 떨어졌습니다. 쿠션도 꺼졌고, 높이 조절도 되지 않아 방석을 두 개 깔고 앉아야만 식탁 위 노트북에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이곳에서의 첫날 남긴 일기가 생각납니다. ‘딱 3년만 이 집에서 글 쓰고 성장한다.!’ 굳은 다짐만큼 실천도 반복했습니다.그렇기에 결과도 좋아 나름의 성장세를 이루어 가는 중입니다.


잘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 오래도록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정과 박수받는 작가 보다, 위로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오늘의 마침표 하나에 눈물 한번 훔치고, 단단한 돌도 나만의 온기로 따스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함께 쓰는 분 모두가 그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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