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설명서

39.

by 회색달

타지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혼자 보낸 뒤부터는 따로 챙기지 않았다. 생일 기념 문자와 이메일, 카톡으로 도착한 광고성 축하 메시지를 하나 하나 지우는 일도 귀찮았다.


몸과, 마음 모두 바싹 말랐다. 마침 근로자의 날이기도 해서 출근을 안 했던 터라 하루가 다 가도록 침대를 떠나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러다 배고프면 물 한잔 들이켜고 다시 누웠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기쁜 감정 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드는 날이었다.


갑자기 계절이 바뀌는 법은 없었다. 어제까지 추운 겨울이었다가 오늘 아침, 갑자기 꽃이 핀다던가 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어느 날은 침대에서 일어나 근처 공원을 걸었고, 어떤 날은 친구에게 전활 걸어 안부 인사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조금씩 평범한 날들에 기웃 거리며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제 역할을 다한 4월의 달력을 찢었다.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바로 옆 벚나무는 꽃을 만개했는데도 한 송이도 피지 않은 나무가 있는 것처럼, 같은 노력을 했음에도 나 혼자 성과를 얻지 못하는 때.

일단 자책은 금물이다. 동시에 나를 돌아봐야 한다.


며칠 전 밤에 운전할 일이 생기어 시동을 걸었다가 계기판 경고등이 들어온 걸 본 적 있다. 불안한 마음에 운전석의 버튼을 이곳저곳 눌러보고, 시동을 껐다가 다시 켜봤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앞으로 전조등을 살펴봤다. 오른쪽 전조등의 하향등이 점등되지 않았다.


나는 겁이 많다.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 늘 해왔던 일을 반복하는 편을 선호한다. 같은 색깔과 모양의 티셔츠가 열 벌 있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놀림을 받을 정도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닥친 변화는 나를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이 밤에 정비소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택시를 불러 이동할까 했다가 거리가 가까우니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었다.


다음 날,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자동차 설명서를 꺼냈다. 보관만 했던 터라 겉에 포장된 비닐을 뜯으니 기름 냄새가 났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정격 전압과 전류가 맞는 전구를 구매해 교체하면 될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열어 곧바로 인터넷에서 주문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을 때, 우울함이 온몸을 감싸다 못해 정체 모를 통증까지 느껴질 땐 더 자주, 더 오래도록 글을 썼다. 머릿속 생각나는 모든 감정과 고민을 손에 옮기다 보면 별 것 아닌 일을 담아두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라면, 모든 문제에는 해답이 있다. 경험이 부족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실패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내 마음 설명서]에 담았다가 [오늘이라는 삶은 처음이라 그래]에 옮겼다. 오늘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처음이니, 초보라는 생각으로 안전 운전하자는 바램이었다.


나에게만 겨울이 유독 길고, 추운 줄 알았다. 나만 되는 일없고, 좌절을 겪는 줄 알았다. 쓰다 보니 지금의 나를 돌아볼 여유와 생각이 깊어졌다. 답답함을 덜 생각에 시작한 책 쓰기는 어느덧 공저 일곱 번째다. 겨울의 끝은 분명 있다. 그 다음이 봄이다. 비록 다른 나무처럼 일찍 피지 못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일찍 피고 지는 벚나무가 아니라, 5월의 여왕이라는 장미 일 수도 있을 테니.


꽃나무는 완전히 성장하기 전까지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안다. 묵묵히 시간을 보내며 버틸 뿐이다. 나도 그렇게 성장하기를 꿈꾸며 기다린다. 나의 꽃이 만개하는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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