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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라는 삶의 지점에 서니, 자꾸 서른 무렵의 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때의 나는 흔들리는 갈대 같았고, 깊은 어둠 속에 갇힌 듯했다. 방황이라는 단어로는 채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혼란 속에서, 나는 알코올이라는 쉬운 도피처에 몸을 숨기곤 했다. 술에 취해 잠들고, 술이 깨면 다시 찾아오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는 나날들. 그 시절의 나는 분명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특히 ‘나 자신으로 온전히 홀로 서는 연습’ 을 혹독하게 치르지 못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여러 일을 해봤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금방 그만뒀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오해를 받았다. 관계가 나아지도록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골은 더욱 깊어졌다. 사람을 쉽게 믿었다. 선배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적도 있었고, 호기심에 도박했다가 돈을 잃어본 적도 있었다.
이혼했다. 남은 때 되면 다하는 승진을 나만 못했다. 알코올 중독에 빠졌다. 우울증에 시달렸고 정신과 상담과 약을 먹어야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생각할수록 답답했다. 왜 나는 그토록 방황했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아무것도 노력을 기울인 적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망과’ ‘핑계’만 대던 시절, 나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결론은 간단했다.
연습이 부족해서였다. 달리기를 잘하고 싶거든 자주 달리면 되고, 헬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무게를 무겁게 하여 힘을 기르는 연습을 하면 됐다. 하지만 나는 노력 대신 결과를 원했다. 진정한 가치는 결과가 아니라 땀방울에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이루어 놓은 성과만을 부러워했고, 과정에서 흘린 땀방울의 무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패와 성공 모두 삶 앞에서는 연습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때는 삶을 오해하며 살았다. ‘이번 생은 틀렸다!’라는 생각, ‘차라리 포기하자!’라는 건방과 오만으로 삶을 대했다.
어느 날 거울 속 초췌한 나를 보았을 때, 혹은 술기운에 저지른 후회스러운 행동들 앞에서,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무너지겠구나.' 서른에 겪었던 이 지독한 방황과 알코올 의존의 굴레를, 마흔에도, 그 이후에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강한 절박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부터 과거의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불안해했고, 왜 혼자 서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왜 술에 의지해야만 했을까.
성찰의 끝에서 얻은 답은 하나였다. 나는 제대로 ‘사는 연습’, 그중에서도 ‘혼자 힘으로 삶이라는 파도 위에 균형을 잡고 서는 연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외부의 지지나 기대에 익숙해져 있었지, 내면의 힘으로 나를 지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서른의 내가 길을 잃고 헤맸던 것은, 결국 내 안의 나침반을 보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다시는 그때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짐은, 곧 '혼자 서는 연습'을 시작하겠다는 선언과 같았다. 술잔 대신 책과 볼펜을 들었다. 읽고 생각하며 작가의 인상 깊은 말 한마디에 밑줄을 그었다. 필사했고, 나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퇴근 후 밤에는 노트북 앞에 앉아 『오늘은 처음 살아봐서 그렇습니다』라는 수필을 썼다.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한 직장이었으나, 적응하지 못하여 보낸 시간을 떠올렸다. 고민이 하나 생길 때마다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먼저 길을 걸어간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들의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 좌절과 극복을 읽으며 나는 삶의 다양한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혼자라고 느낄 때, 책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줬다. 그들의 지혜는 내가 나아갈 방향을 어렴풋이나마 보여주기도 했다. 독서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깨달았다.
하얀 종이 위에 내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는 행위는 나 자신과의 가장 솔직한 대화였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글이 되는 순간 정리가 되고, 막막했던 문제들이 글을 쓰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갔다. 특히 힘들었던 서른의 시절을 글로 옮기면서, 나는 그때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팠던 기억들을 글로 쓰면서 치유 받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삶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원고 한편의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눴다. 그러자 내 글을 읽은 다른 분들이 집착과 걱정 대신 오늘과 지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신 또한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기로 마음먹고는 짧은 글을 들려줬다. 한편의 기록은 인생의 벽돌 한 칸이 되어갔다.
또한 글쓰기는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 연습이기도 했다.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나는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나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는 대신,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이 '혼자서도 괜찮지만, 함께라서 더 좋은 삶을 살아가는 연습이 됐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쏟는 대신 내 힘으로 가능한 일에 집중하자, 모든 일상이 글감으로 다가왔다. 원망 대신 각오를, 핑계 대신 방법을 찾는 데 노력하자 조금씩 삶이 변했다.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높은 허들 같은 하루는 뒤돌아보면 어느새 훌쩍 지나쳐 있었고, 더 빠르고 높게 넘을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일을 겪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고, 가슴 아픈 이별, 견디기 힘든 아픔 등 기쁜 일보다는 눈물로 얼룩진 시간이 더 기억에 남을 터다. 그럴 때마다 ‘연습 한번 제대로 했다.’라고 여기면 된다.
서른의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미숙한 아이 같았지만, 마흔의 나는 그래도 제법 단단해졌다. 여전히 삶이라는 바다 위에서 흔들릴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파도에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처럼 무력하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내 안에는 독서와 글쓰기라는 든든한 두 개의 나침반과 닻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연습을 통해 나는 오늘도 ‘나 혼자 온전히 서는 법’을 배우고 또 배운다. 서툴고 넘어지더라도 괜찮다. 다시 일어설 힘이 내 안에 있음을, 독서와 글쓰기가 매일매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른의 나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때 네가 겪었던 모든 방황은, 마흔의 네가 이렇게 단단하게 서기 위한 혹독한 연습 과정이었다고. 그리고 이제 너는 너의 힘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