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너머연구소 1화

추천은 하는데, 줄 약이 없다

by 레디약사

추천은 하는데, 줄 약이 없다



“약사님, 이거 오래 먹여도 괜찮아요?”

소아과 밑 약국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질문이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아이가 아픈데 참기만 하면 더 안 좋아질 수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아프지 않게 면역력을 키우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 질문에서였다.


“그럼, 면역력에 좋은 영양제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그 순간, 나는 늘 멈칫했다.

솔직히 말해,

추천할 만한 게 없었다.




어른 영양제는 많다.

성분도 명확하고, 기능도 뚜렷하다.

그런데 아이들 제품은?

대부분은 겉만 귀엽고 맛만 달콤하다.

성분은 애매하거나, 용량이 터무니없이 적다.


내가 약사인데도

“이건 진짜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이 없었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걸렸다.

결국, 결심했다.

없으면… 내가 만들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바로 알게 됐다.

“아, 이래서 다들 안 만드는구나.”




어른 영양제는 간단하다.

성분 맞추고, 캡슐에 넣으면 끝.

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먹고 삼키면 되니까.

그런데 아이들 제품은 다르다.

맛없으면 입에도 안 대고,

질감이 이상하면 바로 뱉는다.

결국 아이가 먹어야하니까

까다로운 아이들의 입맛을 저격해야한다.


샘플을 몇십 번 넘게 만들었다.

하루는 강황이 너무 강해서 기침이 났고,

또 하루는 사과향이 너무 옅어서 아무 맛도 안 났다.


맛을 맞추면 점도가 이상해지고,

점도를 맞추면 성분 배합이 깨지고,

성분을 맞추면 원료가 단종됐다.

고치면 무너지고,

맞추면 다시 엉망이 됐다.


끝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하나를 깨달았다.

몸에 좋은 건 대부분 맛이 없다.

아이들은 맛없으면 절대 안 먹는다.


그래서 나는

맛과 효과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작했다.

맛을 살리면 성분이 약해지고,

성분을 넣으면 맛이 사라진다.

하나로 타협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시중 제품하고 다를바가 없으니까




시간은 흘렀고,

통장은 비어갔고,

머리숱도 많이 줄었다.


지인은 말했다.

“그 시간에 유튜브 했으면 구독자 10만 넘었겠다.”

진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처음 들었던 그 질문 때문에 ...

“약사님, 아이한테 줄 만한 영양제 없을까요?”


험난하고 힘든길을 지나

이 글을 적는 지금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있어요. 이럴때는 이거를 먹여보세요.”




돈을 벌고 싶었으면 그냥 약국을 계속했을 거다.

이 일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익도 불확실하고,

솔직히 말해 너무 힘들고, 정말 피곤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자꾸 이쪽으로 마음이 향했다.

왜일까.

아마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이걸 진짜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 없으면,

또 누군가는 대충 만든 걸로 버티게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타협하지 않았다.

누군가에는 진상으로

누군가에게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준 고마운 사람으로


포기하지 않고

성분도, 맛도, 안전성도.

하나하나 끝까지 따져가며 만들었다.




이건 단순한 제품 개발 이야기가 아니다.

약사로서,

그리고 초보 사업가로서

내가 나 자신에게 낸 대답을 담은 이야기다.


성공 스토리는 아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많기 때문에..


그냥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하루하루 실패를 배우며

조용히 쌓아온 기록이다.


약국에서 아이 하나를 걱정하다가

괜히 시작해버린

진심 반, 무모함 반의 회고록이다.



다음 화 예고 : 대표님이 된 날


우연한 대화에서 사업이 들통났고,

갑자기 ‘대표님’이 되어 있었다.


[약국너머연구소 2화 : '대표님이 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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