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이 된 날
2022년 연말.
"영양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생각만 하루 종일 맴돌았다.
레시피도 없고, 인맥도 없고,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검색창에 ‘영양제 만드는 법’을 치다가, 친구에게 들켰다.
"너 진짜 그걸 검색해봤어?"
"응… 진심이야."
그렇게 시작된 내 인생 첫 창업은,
‘지인의 지인의 선배’를 통해 겨우 연결된 한 공장으로부터였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저… 그… 어린이 영양제를 하나 만들어보려고 하는데요…"
말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런데 수화기 너머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 대답했다.
"대표님, 미팅부터 먼저 하시죠."
대표님이라니.
아직 명함도 없었는데.
사업이라는 건, 제품보다 서류가 먼저였다.
법인 설립, 상표 등록, 사업자 등록, 통신판매업 신고까지.
'창업 준비 체크리스트'를 검색했더니, PDF가 아니라 책자였다.
심지어 두꺼운 책자. 읽기도 전에 현기증이 왔다.
항목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다 돈이었다.
상표권 우선심사 대행료, 법인 등기 수수료, 명함 인쇄비…
변리사는 수수료를 챙겼고, 행정사는 도장을 찍었고,
통장은 조용히 얇아졌다.
계속 드는 생각.
‘이건 진짜 필요한 거 맞나?’
그런데 ‘혹시 빠뜨리면 안 될까?’ 하는 마음에, 다 하게 된다.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돈이 새어나가기 시작했다.
사업은 아이템보다 서류가 먼저다.
아이디어보다 도장이 먼저다.
창의력보다 인감증명서가 중요하다.
꿈을 꾸기도 전에, 잔고가 먼저 깨진다.
사무실은 안산시청 앞의 한 오피스텔 공유오피스를 구했다.
월세도 저렴했고, 조용했다.
“일단 책상 하나 있으면 되지”라는 심정이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미팅이 대부분 서울이었다.
대부분의 제조사의 본사는 강남에 있었고,
회의실이 없는 나는
친구 사무실의 미팅룸을 하루씩 빌려가며 일정을 소화했다.
심지어 일정이 겹치면 다른 친구 사무실을 전전했다.
"오늘은 어디 사무실 쓰냐?"
"오늘은 성수동, 내일은 여의도."
무슨 ‘사무실 유랑단’도 아니고.
겉보기엔 바쁜 대표 같았지만,
실제론 지하철 안에서 노트북 켜고 노션에 자료 정리하느라 정신없었다.
명함도 만들었다.
디자인 비용이 아까워 디자인은 내가 직접 했다.
PPT로 시안을 만들어 출력소에 넘겼다.
폰트는 애매했고, 종이는 얇았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두꺼웠다.
이름 아래 ‘대표’라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정작 한 푼도 못 벌었지만, 어깨가 으쓱했다.
지금 보면 그 명함은 촌스럽고 얇았지만,
그땐 정말 자랑스러웠다.
"진짜 시작이구나…"
책상 한쪽에 놓인 명함 몇 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준비만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명함이 생겼고, 사무실도 있었고,
이제 제품을 만들어봐야겠다.
브랜드 라인업을 구상하고,
논문과 자료를 밤새 읽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본 건 두 가지.
1. 영유아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성분인지
2. 아이들이 아플 때 먹어도 되는지
아이들 영양제는 어른들 것보다 훨씬 신중해야 했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들은 이런걸 고려하지 않는 제품이 너무 많았다.
몸에 들어가는 거니까, 내가 만들 땐 최소한 이 두 가지만큼은 지켜야 했다.
약사님들, 의사 선생님, 한의사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이 조합 괜찮을까요?"
"이거 실제로 효과 있을까요?"
하나하나 질문하며 노션에 빼곡히 정리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망의 미팅 날.
A사와 성수동 친구 사무실에서 미팅을 하게 되었다.
다음 화 예고 : "사무실 없이 버틴 창업"
회의실도 없고 명함 하나 들고 다녔다.
그 시절엔 얼굴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