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너머연구소 3화

"사무실 없이 버틴 창업"

by 레디약사

사무실 없이 버틴 창업



기획서는 완벽했다.

논문으로, 자료로, 자문으로

만들고 싶은 제품의 모습을

정성껏 정리해 넣었다.


이제 제조사와 미팅만 하면 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성수동. 친구가 빌려준 임시 회의실.

출력한 기획서를 들고

첫 미팅 자리에 앉았다.

입은 바짝 말라 있었지만

기대와 자신감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공장 팀장은

기획서를 몇 장 넘겨보더니

딱 한마디 했다.


“그렇게는 못 만듭니다.”


순간, 정적.


“아이들은 맛이 전부예요.

맛없는 성분이 25%만 넘어가도

그냥 안 먹습니다.”


…몰랐다.

진짜 몰랐다.


좋은 성분을 넣고 찍으면

좋은 제품이 되는 줄 알았다.

애써 준비한 기획서가 무로 돌아갔다.


“그래도… 시도는 가능한 거 아닌가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대답이었다.




회의실을 나서자마자

노트북을 켰다.


이름만 들어본 유명 공장들,

다 찾아봤다.

조건 안 따지고, 일단 연락부터 했다.


다시 친구에게 부탁해 회의실을 빌리고,

출력한 기획서를 들고 제조사 하나씩 만나러 다녔다.

회사도 없고, 직원도 없었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공장 사람들은 안다.

이 사람이 진짜 할 사람인지.

말투, 눈빛, 태도, 명함 한 장까지 다 본다.


수 많은 미팅에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꼭 이 공장하고 할테니 샘플 좀 신경써주세요"


어떤 곳은 샘플비 30만 원,

어떤 곳은 무료.

나는 모두에게 샘플을 요청했다.

샘플 받은 수십곳 중에 한곳과 진행하겠지만

가장 좋은 제품을 만드는게 중요했다.


지금 생각하면 민폐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맛이라는 벽에 계속 부딪혔다.


성분이 좋으면 맛이 없고,

맛을 맞추면 성분이 무너졌다.


공장은 “맛이 우선”이라 했고,

나는 끝까지 “성분이 먼저”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타협을 하고

결국 성분을 택했다.


아이들은 맛으로 판단하겠지만,

영양제는 건강을 위한 제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 먹는 것보다

진짜 효과가 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선택이

이후 얼마나 힘든 길이 될지는

그땐 몰랐다.




다음 화 예고 : 이 맛으로 만들 거예요?


맛을 맞추면 성분이 틀어지고,

성분을 맞추면 맛이 망가졌다..


[약국너머연구소 4화 : '이 맛으로 만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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