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너머연구소 4화

이 맛으로 만들 거예요?

by 레디약사

이 맛으로 만들 거예요?



처음 샘플을 받았을 때,

조금은 설렜다.

포장을 뜯고, 조심스럽게 하나를 입에 넣었다.


…정적.

그리고 바로 외쳤다.


“이걸 아이한테 먹이라고요!?”


입에 넣자마자 퍼지는 가루 맛.

쓴맛, 떫은맛, 이도 저도 아닌 향.

녹지도 않고, 씹으면 텁텁하기만 했다.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 진짜 아무도 못 먹겠구나.’


그날부터 샘플 전쟁이 시작됐다.




맛을 맞추면 점도가 틀어지고,

점도를 잡으면 성분 배합이 깨졌다.

성분을 유지하면 원료가 단종됐고,

단종을 피하면 맛이 다시 망가졌다.


고치면 무너지고,

맞추면 다시 어긋났다.


보통은 샘플 2~3번이면 끝난다.

나는 이과정을

최소 열 번이 넘게 반복했다.


수정 요청, 재요청, 또 수정.

매번 조금씩 바꾸고, 다시 먹어보고,

또 고치고, 다시 요청했다.


그렇게 수개월을 버텨

드디어 ‘이제 괜찮다’ 싶은 샘플이 나왔다.


맛, 성분, 질감.

모든 게 균형을 맞춘 것 같았다.


“이제 진짜 끝났다.”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샘플 안에 문제가 숨어 있었다.


성분표를 다시 확인하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수산화 마그네슘.


“이거… 원래 쓰던 마그네슘 아니죠?”


공장은 말했다.


“네. 기존 것도 괜찮은데,

이게 더 맛이 좋아요.

요즘 이거 많이 써요.”


순간, 머리가 띵했다.


수산화 마그네슘은 약국에서 변비약으로 쓰는 성분이다.

나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맛 때문에 여러 제품들에

유행처럼 쓰이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에게 줄 성분은 아니었다.


다들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만들어야하는가


그래서?

이걸 써야 하나?

이걸 안쓰면 맛이 너무 안 좋아 지는데..


고민중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질문 하나.


“약사님, 이거 오래 먹여도 괜찮아요?”


그게 떠오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샘플이

한순간에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이걸 만들기까지 반년.

수십 번의 샘플, 끝없는 피드백,

드디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하나의 마그네슘 때문에,

그 모든 시간이 무너져버렸다.


울컥하는 걸 억지로 삼키고,

다시 원료부터 찾기 시작했다.

다시 설계하고, 다시 조율했다.


그당시엔 너무 힘들었다.

몇개월동안 찾은 최선의 결과물을 버리고

새로 다시할 생각에..


나도 제조사도 너무 지친 상황이였고

어쩌면 이번에도 또 무너질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공장과 마찰은 극에 달했다.


“이건 너무 자주 바꾸시는 거예요.”

“보통은 이렇게까지 안 하십니다.”

“대표님 진짜 생산하실거에요?”


나는 말했다.


“전 그냥 무난한 게 아니라,

제 기준에 맞는 걸 만들고 싶어요.”


그때부터는

부탁이 아니라

버팀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허접한 제품을 만드는 사람보다는,

진상 취급 받는 사람이 낫다.


이건 그냥 하나 팔고 끝나는 제품이 아니라,

아이가 먹는 제품이니까.


노니쥬스, 백수오 등

여러 사건들을 보면서

한탕치고 도망가는 회사들을 수없이 봤다.

나는 그런 회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진심을 꺾지 않고

수십 번을 싸운 끝에

드디어 하나의 제품이 완성됐다.


그렇게 몇 번을 무너지고,

다시 쌓고,

또 무너지고,

끝내 하나를 만들었다.


그건 그냥 제품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기준의 결과였다.




다음 화 예고 : 디자인이 PPT 수준일 때


초등학생 PPT 같은 디자인이 왔다.

결국 밤새 통화로 다시 만들었다.


[약국너머연구소 5화 : '디자인이 PPT 수준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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