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PPT 수준일 때
드디어 샘플이 확정됐다.
내 10개월의 시간..
이제 진짜 끝인 줄 알았다.
“이제 포장만 하면 되겠네?”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는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익숙한 디자이너에게 맡겼다.
로고도 함께 만들었던 분이었다.
그땐 새벽까지 통화하며 호흡도 잘 맞았고,
이번에도 잘될 줄 알았다.
견적은 50만 원.
초보 창업자에겐 큰돈이었지만,
그래도 믿고 맡겼다.
2주 뒤,
“초안 나왔어요! 기린 캐릭터랑 함께 넣어봤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정말 5초 동안 멍해졌다.
캐릭터는 제품 콘셉트와 아무 상관도 없었고,
색감은 칙칙했고,
전체 분위기는… 그냥,
초등학생이 만든 PPT 느낌이었다.
화가 나기보다
그냥 속이 서늘해졌다.
이걸 어쩌지?
다시 맡길 예산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잘못됐다고 말해야 할까?'
당시에 50만원이라는 돈을 포기하고 새로 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결심했다.
“어떻게든 이 사람하고 끝까지 가보자.
내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그날부터 전쟁이었다.
폰트, 색상, 구도, 레이아웃.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서 보내고,
밤마다 통화하며 수정 지시를 했다.
메일로 말이 안 통해서
녹음까지 보내며 설명했다.
디자인을 해본 적도,
기획을 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감각 하나로
하루하루 버텼다.
피드백이 너무 많아
디자이너가 지치는 게 느껴졌다.
나도 미안했고,
솔직히 지쳐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절박해졌다.
내 브랜드의 얼굴이 걸린 문제니까.
제품 개발에
너무 우여곡절을 겪어서
디자인도 어설프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대충 할 수 없었다.
어린이 제품이니까
너무 딱딱하면 안 되고,
건강기능식품이니까
너무 유치해도 안 됐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거에요?”
디자이너가 물었다.
“신뢰감은 있으면서,
아이들도 좋아하고,
약국에서도 눈에 띄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어요.”
말하면서 나도 헷갈렸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근데 말과 다르게 내가 원하는 그림은
진행하면서 점점 더 선명해졌다.
폰트는 둥글지만 또렷하게.
색감은 따뜻하면서 채도는 높게.
캐릭터는 정면을 보되,
디테일은 최대한 단순하게.
결국,
내가 방향을 잡고,
디자이너는 손이 되어준 셈이었다.
크몽에서 정말 많은 작업들을 해보면서
이 바닥은
레퍼런스 없으면 아무 일도 안 된다.
내가 깨달은 3가지 결론은
1. 머릿속에만 있는 건 무의미하다.
→ “이거랑 비슷하게 해주세요”가 최고다.
2. 포트폴리오가 전부다.
→ 가능합니다 라는 말을 믿지말고 결과물을 보자
3. 큰 회사보다 프리랜서가 책임감 있다.
→ 담당자를 지정해서 하는것보다 1인프리랜서가 더 책임감 있다.
이건 책으로 못 배운다.
직접 피 보고, 밤을 새워봐야 알 수 있다.
그렇게 몇십 번의 수정 끝에
드디어 패키지가 완성됐다.
그날, 디자인 파일을 열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이 정도면,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이제 진짜 끝이다.
…싶었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무슨 끝인줄 알았더니 할게 계속 생긴다.
상세페이지, 홈페이지, 촬영, 채널 세팅, 콘텐츠 기획…
“이거 누가 다 해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다음 화 예고 : 포장 직전, 이름이 사라졌다
상표권 거절로 박스를 전량 폐기했다.
30분 만에 새 이름을 짓고 다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