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직전, 이름이 사라졌다
그날은, 제품 생산일이었다.
샘플이 끝났고, 디자인도 확정됐고,
드디어 박스와 라벨을 붙이고 제품을 담는
마지막 공정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특허청에서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상표 거절 통지서]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키즈랩스'라는 이름이 문제였다.
홍이장군의 ‘키즈랩’이라는 이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거절.
이름이 비슷하다고…?
변리사가 이건 문제 될리가 없다고
마음 편하게 진행하시라고 했는데..
그 말을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패키지는 다 찍었고
1시간후면 포장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멘붕인 상태로
변리사에게 전화를 했다.
거절 소식을 전하자
변리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의견서 한번 내볼게요.
통과 가능성 80%정도 될거 같아요.”
그 말이 더 혼란스러웠다.
그럼 나머지 20%는요?
혹시라도 또 거절되면?
그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가
상표가 거절되면
나중에 이름을 바꾸거나
상표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팔고 난 뒤에 소송이라도 걸리면
손해는 몇 배, 몇 년이 될 수도 있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30분 후에 포장 공정이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제조사에 전화했다.
“제발… 포장 멈춰주세요.”
“패키지, 다시 바꿔야 합니다.”
기적처럼, 아직 포장은 시작되지 않았다.
간발의 차이였다.
큰 회사랑 하기를 잘했다.
30분전에 취소를 해도 다음 작업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우리 대신 다른 회사 제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대표님, 이거 이미 만든 패키지는 폐기해요?"
그 순간,
가슴 한쪽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한 장당 몇 백 원짜리 박스,
몇 천 장이 그대로 사라졌다.
몇 백만원과 함께
그 안에는
내 반년의 시간도 함께 있었다.
패키지 디자인, 라벨 조정, 인쇄소 소통까지
내가 밤새며 만든 결과물들이
그날, 박스째로 사라졌다.
새 브랜드명을 급하게 정해야 했다.
박스 재생산에는 2~3주가 걸리니까
당장 인쇄소에 넘길 새 이름이 필요했다.
회의도, 회의실도 없었다.
그냥 혼자, 책상 앞에서 30분 동안
종이에 단어들을 써 내려갔다.
‘아이’, ‘건강’, ‘보호’, ‘믿음’…
그리고 나온 이름.
뉴트리아이.
영문으로는 NUTRI I.
‘아이의 영양’을 지켜주는 이름.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흔한 이름이긴 하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이렇게 읽는다.
“뉴트리…이?”
듣고 있으면 살짝 어지럽다.
그렇지만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이름을 정하자마자
다른 변리사에게 연락해
등록 가능성부터 먼저 확인했다.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고
바로 우선심사로 신청했다.
특허청은
보통 등록 심사에 1년 넘게 걸리지만,
수수료 16만 원을 내면
‘새치기’ 심사를 해준다.
보통 4~6개월로 단축된다.
이때 여기에 쓴 비용은
변리사 수수료와 특허청 비용까지
약 150만 원.
말 그대로,
150만 원어치의 교훈이었다.
브랜드는 마지막에 짓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상표권부터 준비해라.
되도록이면, 우선심사로 넣어라.
사업은 타이밍 싸움이고,
상표권은 느리게 따라온다.
그 둘의 속도차를 모르면
제품이 박스째 사라질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샘플 때문에 일정이 늦어진 게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만약에 샘플이 엎어지지 않고
그대로 진행했으면 이미 키즈랩스로 팔고 있었을꺼다.
수산화 마그네슘 사건 덕분에
포장 직전에 이름을 바꿀 수 있었고,
분쟁도 피할 수 있었다.
'인생은 새옹지마' 라던가
시작도 하기전에
부러지고 시작할 뻔 했다.
다음 화 예고 : 출시 하루 전의 고군분투
사진, 페이지, 마케팅까지 전부 부족했지만
출시는 멈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