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영업하면 생기는 일3

미친 약사의 탄생

by 레디약사

미친 약사의 탄생



첫 약국 영업을 성공한 뒤, 조금씩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이래서 작은 성공이 중요한가 보다.

실패만 반복되던 일 년 반 동안, 내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성공 경험'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자신감을 얻은 것과 반대로

점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지쳐 있었다.

'그래, 이 기세를 타야 한다.

하지만 이게 나 혼자서 가능할까?'


그 무렵, 같이 살던 친구가 있었다.

각종 사업을 해보며 운영에 밝고, 일처리는 칼 같고, 현실적인 성격의 친구.


"나 혼자서 못하겠는데 같이 할래?"


친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할 수는 있는데, 넌 왜 나랑 같이 하자고 한 거야? 이거 해서 뭐하고 싶은 건데?"


"그냥 우리가족 먹고 사는 거랑, 소외되고 있는 아이들 건강에 영향력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그 말을 들은 친구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통했다.


사실 다른 사람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나랑 재주는 다르지만 생각이 비슷한 이 친구와 꼭 하고 싶었다.

사업을 하다 망하면 다신 못 볼 수도 있겠지만, 돈을 못 벌어서 싸운 게 돈 벌고 싸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영업사원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말랑하지 않았다.


영업을 다니며 왜 '영업직'이 최고 난이도 업종인지 온몸으로 체감했다.


"나는 약국에서 별 진상 다 상대해봤으니까 약사님들 정도면 진짜 젠틀하지."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더 세고 덜 세고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스트레스였다.


약국에 손님들 사이로 처음 본 사람이 제품을 들고 들어간다는 것.

거기서 단 5분 안에 제품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결제까지 받아내야 한다.

그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 몸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의정부의 한 약국.

들어가자마자 약사님이 바쁘다는 눈빛을 보냈다.

"죄송한데 지금 좀..."


"안녕하세요, 영양제 사업을 하고 있는 약사입니다. 정말 잠깐만..."


그 한마디에 표정이 바뀌었다.

"아, 약사님이세요? 그러세요."


30분 뒤, 제품 6개와 매대를 놓고 나왔다.


같이 영업을 갔던 친구와 비교해 보면

약사라는 타이틀이

약국가에서는 확실히 먹힌다고 느끼긴 했다.


약국에 들어가면

처음엔 바쁘다고 나가라고 하시다가도

"안녕하세요, 어린이 영양제 회사를 하고 있는 약사입니다"

이 한마디에 다들 들어주려 하셨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강남의 한 약국에서였다.

"영업 오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해요?"

약사님의 차가운 목소리.


"죄송합니다. 저도 약사인데..."


"약사면 약국 사정을 더 잘 알아야죠. 나가세요."


그 말에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끌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맞아. 나도 저 입장이었다면... 똑같이 했을 거야.'




익숙한 광진구에서는 그나마 수월했다.

하지만 의정부, 남양주, 구리, 중구, 송파, 강남...

각 지역마다 분위기와 반응도 제각각이었다.


주차는 힘들고, 말 한마디 걸기 어렵고, 때론 아예 쫓겨나기도 했다.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간다.


아침 9시 시동을 걸고, 저녁 9시가 되어서야 멈췄다.

하루 30곳. 점심은 대충 햄버거로. 돌아오면 기절하고 다시 나가는 삶.




같이 살다 보니 매일 밤 퇴근하자마자 하루를 복기했다.

어떤 멘트가 어땠는지, 브로셔는 언제 꺼내는 게 좋을지.

피곤한 몸으로도 꼭 한 번씩은 되짚었다.


서로 지적도 주고받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맥주 한 캔 놓고 '왜 이걸 하고 있는 거냐'며 웃기도 했다.

그렇게 다음날도 다시 출근하듯 나갔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꽤 건강해져갔다.


5월의 햇살은 참 좋았다.

매일 다른 지역으로 한 시간씩 운전해서 가는 길이, 마치 여행 같았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벗어나 이제야 빛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여름이 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예상보다 뜨겁게.


36도 한낮, 짐 들고 이 약국 저 약국 돌아다니며 수명은 깎였지만,

가맹약국 수는 늘어났다.


어떤 약국에서는 피로회복제도 주시고,

힘내라고 하시고,

아이들에게 좋은 제품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그런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음 약국으로 가는 힘이 됐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한다.

정말 그때는 절실했으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24년 무더운 여름이 지나갈 무렵,

약국가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어떤 미친 약사가 너구리 그려진 빨간색 영양제 들고 다닌대."


(사실 너구리가 아니라 레서팬더인데...)



다음화 예고 : 입소문이 몰려왔다


커뮤니티에 제품이 언급되자,

전국에서 가맹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약사가 영업하면 생기는일 4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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