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가 영업하면 생기는 일5

부산에 던져졌다

by 레디약사

부산에 던져졌다



3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점차 상황은 안정되어갔다.


천만 원이던 매출은

2천만 원으로 늘었고,

가맹 약국 수는 300개를 넘었다.


어떻게 300개가 되었냐고?


다른 건 없다.

그냥 열심히 했다.


솔직히 약사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간절하게 하지 않았으면

이루지 못했을 거다.




"어떻게 약국에 입점했어?

무슨 비법이 있었어?"


사실 딱히 해줄 조언은 없다.

이후에 우리 얘기를 듣고

비슷한 시도를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너구리 그려진 빨간 영양제를 들고

방문 판매하는 미친 약사.

(물론 너구리가 아니라 레서팬더지만)


그 소문이 돌게끔,

우린 진짜 열심히 했을 뿐이다.


같이 영업을 갔던 친구와 비교해 보면

약사라는 타이틀이

약국가에서는 확실히 먹힌다고 느끼긴 했다.


약국에 들어가면

처음엔 바쁘다고 나가라고 하시다가도

"안녕하세요, 어린이 영양제 회사를 하고 있는 약사입니다"

이 한마디에 다들 들어주려 하셨다.


응원도 많이 받았다.

피로회복제도 주시고,

힘내라고 하시고,

아이들에게 좋은 제품 많이 만들어 달라고 하셨다.


정말 감사한 마음뿐이다.




어느 순간,

수도권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졌다.


점점 시스템도 자리를 잡고 있었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먼저 찾아서 가맹을 해주신 약국들을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되겠다.'


동업자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 지방 출장 가야 할 것 같아."


"어디부터?"


"인구 많은 곳부터. 경상도부터 가자."

그렇게 첫 부산 출장 일정이 잡혔다.


'그런데 짐을 어떻게 가져가지?'




제품과 매대, 안내 자료들.

짐이 너무 많았다.

둘이서 영업 기간에 사용할 모든 것을

한 차에 다 실어야 했다.


두 차로 갈지 한 차로 갈지 고민하다가

결국 한 대는 직접 내려가고,

하나는 현지에서 렌트를 하기로 했다.


얼마나 가맹이 늘지,

제품과 매대를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출발 당일.


새벽 4시에 출발해

아침 10시부터 영업을 시작해야 했다.


첫 지방 출장.

설레기도 했고,

괜히 여행 가는 기분도 났다.


"부산 가면 밀면도 먹고,

돼지국밥도 먹고,

해운대도 보고 와야지~"


아직은 철이 없는 새내기 사업가였다.

도착한 첫날, 첫 약국을 돌고 나서야 현실을 깨달았다.


아, 이건 여행이 아니라 생존이구나.




부산에서의 일정은 3박 4일.

월요일은 약국이 바쁘니까,

화·수·목·금 스케줄로.


'자, 부산을 한번 접수해보자.'


호기로운 각오와 달리

걱정도 많았다.


'사투리 못 쓰면 어색해할까?

외지 사람이라 거절하시면 어떡하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내가 표준어를 쓰면,

그분들도 표준어를 쓰셨다.


"서울에서 오셨어요?

아유, 멀리도 오셨네."


괜한 선입견이었다.




첫째 날, 해운대 근처 약국에서였다.

약사님이 제품을 보시더니 물어보셨다.


"이거 우리 애도 먹을 수 있나?"


"네, 몇 살이신가요?"


"일곱 살인데, 감기를 달고 살아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약사 모드가 켜졌다.

제품 설명보다는 그 아이 상황을 더 자세히 물어봤고,

생활 습관이나 다른 방법들도 함께 이야기했다.


30분 가까이 상담을 했는데,

약사님이 말씀하셨다.


"아, 직접 제품 만드시는 분이시네요.

이런 깊은 이야기 나누니까 좋네요."


그때 느꼈다.

같은 약사지만, 제품을 직접 개발한 경험이

대화에 다른 깊이를 준다는 걸.




둘째 날, 서면 근처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약국에 들어가는데 약사님이 전화를 받고 계셨다.

고객 상담 전화였는데, 목소리가 좀 답답해 보이셨다.


전화를 끊으시고 한숨을 쉬시길래

"무슨 일이시나요?"라고 물어봤다.


"요즘 부모님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너무 많이 보고 오시니까,

설명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이건 왜 안 되는지', '저건 왜 먹어야 하는지'

다 물어보시는데..."


나는 우리 제품을 꺼내면서 말했다.

"그래서 저희도 이런 제품을 만들게 된 거예요.

약사가 직접 개발해서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는 제품이요."


그 약사님과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제품 개발 과정부터 약국 현장의 고민들까지.


같은 약사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결국 그 분은 우리 제품뿐만 아니라

다른 약국 두 곳도 소개해 주셨다.




부산을 여행지가 아닌,

일터로 처음 돌아다녀봤다.


구석구석 다니다 보니

서울과는 다른 점들이 보였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현상이

지방에서는 훨씬 체감이 심했고,

병원들이 한 건물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평일 중 하루를 쉬는 병원이 많다는 것도 새로웠다.

전체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조금 더 여유가 느껴지는 동네였다.


하지만 그만큼 약사님들끼리의 유대감도 강했다.

한 분이 좋다고 하시면 주변에서도 관심을 보이시고,

입소문이 퍼지는 속도도 빨랐다.




출장의 현실은 냉정했다.


숙박비, 렌트비, 식비.

출장을 떠나는 순간부터

백만 원은 기본으로 날아갔다.


하루하루,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밀면?

그런 거 없다.

근처 햄버거집에서 대충 때우고 바로 이동.


광안리?

근처 약국은 갔다.

바다는 못 봤다.


몸은 점점 지쳐갔고,

하루가 끝나면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정신은 피곤했고,

체력은 한계였다.


그 와중에도 매일 제품을 꺼내고,

매대를 들고,

처음 보는 약사님들께 5분 안에 나를 설명하고,

결제를 받아야 했다.


익숙한 동네도 아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영업을 넘어 신뢰까지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게 매일 수십 번 반복됐다.




4일 만에 부산 전 지역을 돌 순 없었기 때문에

핵심 약국 위주로 체크해서 방문했다.


금요일이 되었을 때,

부산 내 가맹 약국은 20곳.


목표치는 못 채웠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부산에서도 우리 제품이

아이들에게 닿고 있다는 것.


아직 갈 길은 멀었지만,

이 낯선 도시에서 누군가의 손에 닿고,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생각하니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로 향했다.


이 작은 시작이,

더 큰 의미가 되길 바란다.




부산 출장 이후,

온몸에 골병이 들어

3일은 앓아누워 있었다.


무더위, 무거운 짐, 계속된 긴장감.

몸이 먼저 멈춰버렸다.


뭘 하든,

건강은 챙기고 해야 한다.

그게 진짜 오래가는 힘이다.



다음시리즈 예고 : [효비장군1편, 난 유산균을 만들어 봤다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