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비장군 1편

난 유산균을 만들어 봤다고!!

by 레디약사

아직도 그때가 기억난다.


처음으로 부산에 지방 출장을 다녀오고,

차 안에 앉아 창밖을 보는데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회사는 여전히 적자.

내 월급은 단 한 푼도 못 가져가고 있었다.


명함에는 대표라고 적혀 있었지만,

통장은 늘 마이너스였다.

(통장은 항상 대표병을 치료해주었다.)


남들은 월급날이면 커피라도 한 잔 사 마시는데,

나는 직원들 월급 보내고 나면 편의점 삼각김밥이 전부였다.


이 상황에서 신제품을 낸다고?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도,

그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죽는다'

용기로 나아가는게 아니라

멈출 수 없어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음 제품은

뭘 먼저 낼까 고민했다.

여러 회의 끝에

결론은 유산균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효과가 눈에 보일 만큼 빠르게 나타나는 제품.


실패하면 바로 티 나지만,

성공하면 역시 바로 티 난다.


위험했지만 동시에

승부를 걸기 좋은 카드라고 믿었다.




아마 ‘튼튼칼마디’를 출시하기 직전쯤이었을 거다.

그때 내 인생 첫 유산균 샘플이 나왔다.


사실 유산균은 너무 많이 뒤집고,

다시 하고, 또 새로 하고…

반복을 하도 많이 해서 다 기록하기도 어려웠다.


근데 이상하게

첫 샘플만큼은 기억이 유독 선명하다.

솔직히 기대했다.

내 손으로 만든 유산균,

뭔가 다를 거라고.


샘플을 먹고, 비교 테스트를 돌려봤다.

근데 결과는 허무했다.


그냥 시중에서 파는

유명 균주 100억짜리랑 똑같았다.

차별점이라고 말할 만한 게 없었다.


오히려 더 비싸기만 해서

굳이 이 돈 내고 만들 필요가 없었다.


내가 뭔가 다른 걸 만들었다고 우겨봤자,

아무도 납득하지 못할 게 뻔했다.





문제는,

그 샘플을 받았을 당시,

내 머릿속이 완전히

오개념 덩어리였다는 거다.


나는 이렇게 믿었다.


“유명한 균주 아니면 다 별로다.”

“냉장 보관보다 실온 보관이 진짜 좋은 거다.”

“유산균은 무조건 100억 마리는 들어가야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기지만,

그땐 진짜 진리라고 생각했다.

왜냐고?


대부분의 약사가 그렇다.

약대를 졸업하고,

학회나 강의를 들으면서

자기만의 영양제 가치관을 만든다.


나 역시 그 과정을 그대로 밟았다.

강의에서 들은 지식들을

한치의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이게 옳다”라고 굳게 믿었다.


근데 문제는,

그 지식이라는 게 ‘공적인 기관’이 아니라

대부분 ‘사적인 기관’에서

가공된 정보라는 거다.


결국 업계에서는 공식처럼 외운다.

“유산균은 이 세 군데 원료사 아니면 다 걸러라.”

“오메가3는 저 세 군데 아니면 다 쓰레기다.”


나도 똑같았다.

왜 좋은지는 몰랐고,

그냥 그렇게 외웠다.


그러니까 오만했다.


'유산균은 무조건 100억.'

'이 균주 아니면 다 쓰레기.'


그렇게 오만한 생각 속에서

첫 샘플을 테스트 했으니...

다른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우수한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제품들도 똑같이

유명 균주 100억 기준으로 만들고 있었으니까.


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다 비슷비슷했다.


그냥 서로 유명 균주를

어떻게 조금 다르게 섞었나 게임이였다


그래서 더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수십 번의 테스트가 진행됬다.




먼저 균수.

Q: 1억, 10억, 100억. 그렇게 다르냐?

A: 균마다 장까지 살아남는 생존율이 다르다.

보통 1억 이상이면 충분하다.


물론 많으면 좋다.

근데 1억 대비 100억이라고 해서

가격이 비싸지는 것만큼

체감 효과가 좋은지는 솔직히 의문이었다.


차라리 100억을 한 번에 먹지 말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눠 먹는 게 훨씬 낫다.


그다음은 균주.

Q: 해외 유명 원료사 균주가 제일 좋은가요?

A: 유산균의 이름은

‘속 종 균주’로 알면 된다.


예를 들어 Lactobacillus rhamnosus GG와 HN001은

속·종은 같아도 균주는 다르다.

형과 동생 같은 개념이다.

닮은 데도 있지만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해외 유명 원료사는 자기 자식들 연구를 많이 하니까

데이터는 타사대비 풍부했다.

하지만 연구가 많다고 해서

꼭 효과가 좋다는 보장은 없었다.


Q: 균주는 하나로만 된 게 좋나요, 여러 개 섞인 게 좋나요?

A: 케이스가 워낙 많아 단정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각 균주가 최소 1억 이상 들어가야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야 시너지가 나든 말든 실험할 만하다.


가끔은 두 개를 같이 넣으면 시너지가 나지만,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18종, 19종 혼합유산균은 비추한다.

마케팅용으로 나온

균수 채우기용일 뿐이다.


제품 뒷면을 보면

원료명이 양 많은 순서대로 적혀 있는데,

메인균과 서브균이 뭔지 보고

판단하는 게 맞다.


마지막은 제형.

Q: 캡슐이랑 분말 중에 뭘 골라야 해요?

A: 솔직히 큰 차이는 없다.

캡슐이 장까지 도달하는 데 유리하긴 하지만,

요즘은 분말도 코팅을 해서 별 문제 없다.

제형 때문에 효과를 못 보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중요한 건

자기한테 맞는 균주와 배합을 찾는 거다.


이렇게 균수, 균주, 제형까지

수십 번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덮으면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이건 아니다.”


근데 바로 뒤에

현실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여기서 접으면 그냥 끝나는 거 아니야?”


그 두 목소리 사이에서

정신병 걸릴 것 같은 하루들이 이어졌다.

버티면 뭔가 답이 나올 것 같기도 했고,

동시에 그냥 벽에 머리를 박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결국...

중간에 유산균 개발을 접었다.

왜냐고?

내가 어떤 유산균을 만들고 싶은지 모르겠으니까


두 번의 제품 출시를 통해

'남들 하는거 따라 만들거면

그냥 안하는게 맞다' 를

뼈 저리게 배웠기 때문에

일단은 개발을 포기했다.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뭘까?"


지난 경험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명백해졌다.


'대기업이 하지 않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걸 해내야 한다.'


대기업이 하지 않는

= 광고하기에 좋지 않은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 효과가 좋은


유산균은 대체 뭘까..?


이 답을 찾는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다음화 예고 : [효비장군2편, 시장에 없던 유산균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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