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있어서든 그렇지 않든, 하고 싶어서든 그렇지 않든,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든 그렇지 않든 한 번 시작했다면 멈춰 선 아니 된다. 특히 가족 안에서 그 어떠한 일을 시작했다면 더욱이 브레이크를 밟지 말아야 한다. 만약 스스로 제동을 걸게 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어지럼증을 겪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이름으로, 아주 가끔 남편의 이름으로 당신이 시작한 그 어떤 일에 관해 ‘이제 그만'을 외치는 순간, 낭만은 사라지게 된다.
태산(泰山)이 높다 하지만 하늘 아래 산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세 가족 안에서 머리 말려주는 남자를 맡고 있다. 아빠의 이름으로 시작했던 이것이 어느새 남편의 이름으로도 확장되었다. 물론 딸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한 달 평균 3 ~ 4회는 아내의 머리도 말려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머리 말려주는 남자가 된 계기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 늦은 퇴근과 함께 때마침 샤워를 끝내고 나온 딸아이 그리고 화장실이 급하다던 아내의 부탁이었다. 바통은 다름 아닌 헤어드라이어. 개인적으로 집에서 가장 즐겨 쓰지 않는 전기제품이 헤어드라이어다. 그만큼 내 손에 쥐어진 헤어드라이어가 어색할 뿐만 아니라 그 쉬운 작동방법 조차 낯설었다.
아... 아퍼.
아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이렇게...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이렇게.
앗, 뜨거워!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이 시작이 겨울 어느 날이었다는 것이다. 외투만 겨우 벗어던져놓고 한 손엔 무기와도 같은 드라이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딸아이의 젖은 머리와 사투를 벌였다. 두터운 겉옷이 걸리적거렸지만 벗을 엄두를 못 내었다. 나는 한다고 하는데 딸아이의 불평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덜미를 따라 떨어지는 땀방울을 느낄 수 있었다. 혹시 아는가? 겨울철 지하철 안이 매우 후덥지근하여 입고 있던 다운점퍼를 벗고 싶어도 매우 혼잡하여 등짝 한가운데가 뜨거워지면서 땀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 찝찝한 기분을.
딸아이의 젖은 머리와 사투를 벌인 지 얼마 지났을까? 손목도 저리고 허리도 아파왔다. 도대체 여자들의 머리는 왜 이토록 긴 것일까? 아니 왜 길게 기르는 것인가? 긴 생머리의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던 어린 시절 내 말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딸아이의 머리를 말렸던 아내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아직도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는 아내의 소식이 참으로 궁금했다.
그렇게 하면 엉키잖아.
아래로. 아니, 아니... 아.래.로.
옳지, 옳지. 잘하네!
그때 산신령이 나타나듯이 하얀 김을 휘감고 아내가 나타났다. 화장실이 급하다던 아내는 샤워까지 마치고 나왔다. 30분! 딸아이의 젖은 머리를 말리는 일과 사투를 벌인 지가 무려 30분이 흘렀던 것이다. 곧이어 ‘이만하면 됐어’는 아내의 말과 함께 바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산이 제 아무리 높다 한들 사람이 오른다면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또 이렇게 알게 됐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오르지 않고 산만 높다 한다
딸아이의 머리를 말리는 일은 이제 이를 닦는 것처럼 일상이 되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구난방인 퇴근 시간이어도 딸아이는 내 퇴근시간에 맞춰 샤워를 끝내고 나온다. 처음에는 일부러 그러는구나 싶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자로 잰 듯한 타이밍이란 말인가? 어쩌다 보니 시작한 일이라고 하지만 또 아빠로서 당연히 여겨야 하는 마음가짐이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이 나는 내 마음을 제어하면 할수록 억울하기만 했다.
몸이 피곤한 날, 특히 술을 먹고 들어온 날엔 더더욱. 그러면 안 됐는데, 역시 취한 사람의 뇌는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기억력까지 좀먹으니 취객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야말로 고역 이리라. 그다음 날, 기억을 떠올려보니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못하겠다고 했단다. 이 핑계, 저 핑계 온갖 핑곗거리를 늘어놓은 것이 생각났다. 목청도 높이면서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모녀에게 ‘우리 집 언성남’으로 통했다. 싸늘한 집안 분위기, 싸늘한 시선, 싸늘한 감정까지. 실수다. 내가 실수했다. 어느 날 퇴근 후 딸아이의 머리를 말리고 있는 아내를 보니 아내 머리 또한 젖어 있었다.
앉아봐.
당신 머린 내가 말려줄게!
다시금 내 손에 헤어드라이어가 쥐어졌다. 거침없는 손 돌림과 빠르기로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지금만 큼은 내가 아내의 헤어 디자이너다. 이렇게 남편의 이름으로 나는 아내의 머리를 말리는 남자가 되었다. 이후 딸아이와 가끔이지만 아내의 젖은 머리를 묵묵히 말렸다. 그간 알게 모르게 실력이 늘어갔다. 시간도 많이 짧아졌다. 노하우가 생긴 것이다. 역시 노력하면 할 수 있다.할 수 있는데 핑계를 대며 하지 않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고로 나의 이 핑계, 저 핑계는 비판받을 일이었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누군가가 연애에 관해, 결혼에 관해 나에게 물어오면 주저 없이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꼭 읽어 보라고 강력추천한다. ‘결혼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고, 사랑의 관계가 지속 가능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다’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어서다.
아빠의 이름으로 딸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는 남자로 살아간 시간과 기간은 비록 오래되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한 가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엄마로서 당연히 받아들이고 해야 하는 수많은 양육이 얼마나 지치고 피곤한 업(業)인가'다. 지금까지 딸아이의 머리를 말려주는 아내의 모습을 당연하게 바라봤던 내 시선이 못내 아쉽다. 나 스스로 보다 빠르게 변화를 주지 못했던 것이 참으로 현명하지 못했다. 결혼만 하면 저 하늘의 별도 당장 따다 줄 것처럼 끊질 기게 구애를 하던 순정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결혼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음에도 까마귀 고기를 먹은 사람처럼 매일 양육에 관해서는 리셋되는 남자와 한 이불 덮고 살고 있으니 아내는 그 속이 매우 넓은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 딸아이에게 말했다. 넌 좋겠다고. 만약 아빠가 다시 태어난다면 네 엄마의 딸로 태어나보고 싶다고.
오늘도 퇴근이 늦다. 그러나 어김없이 딸아이의 머리 말리는 일은 내 몫일 것이다. 요 몇 주 아내의 머리를 말려주지 못했다. 타이밍이 맞는다면 오늘 아내의 젖은 머리도 내가 말려 줄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유난히 피곤하다. 그래서 싫으냐고? 귀찮으냐고? 어찌어찌해서 아빠의 이름으로, 아주 가끔 남편의 이름으로 시작된 머리 말려주는 남자는 이제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지금껏 쌓인 노하우에 빛을 더할 방법으로 기능성 좋은 D사 헤어드라이어를 구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