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다. 싫은 건 아니지만 아빠가 생색내고 싶어서 지은 이름 같다나? 그리고 '윤쌤'이라고 부르라고 하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호칭이란다. 또... 앞으로 이런 계획이다라고 말하려는데 더 이상 듣지 못하겠는지 뒤꽁무니를 내빼듯 아내한테로 달려갔다. 이 분위기는 뭐지? 그런데 진짜 별론가? <윤쌤이 만든 '아빠펜' 독서지도 학습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딸아이한테 퇴짜 맞은 기분이다.
"다 좋은데, 하나만 다짐하고 시작하는 걸로 하자!"
잠자리에 누우려고 할 때 아내가 말했다. 맞벌이 부부이기도 하지만 내 사정상 대부분 토요일 하루만 쉬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대화하는 시간은 잠자리에 눕기 전이 대부분이다. 금세 끝나는 대화도 많지만 이렇게 잠자리에 눕기 전 대화를 나누다 새벽 3시까지 잠을 놓치기도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 알지? 알 거야! 네 기분에 따라 우리 집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한다는 거. 감정 추스르지 못할 거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
알지? 네 기분에 따라 우리 집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된다는 거. / (c)슬로우 스타터
아내의 말에 유튜브로 토트넘 통산 100호 골의 축포를 터뜨린 sonny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멈췄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며칠 전 아내와 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특별히 화를 내야 할 이유도 없었고, 설사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더라도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어야 했다. 벌써 여러 번, 아니 수 없이 스스로 느끼고 또 아내에게 들었던 말인데도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집안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곤 한다. 감정 기복이 생기더라도 밖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는데 집에서는 곧 잘 드러내는 편이다. 결국 나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딸아이에게도 모두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이쯤 되면 나는 우리 집 민폐남이 아니겠는가!
딸아이의 장래희망은 교사다. 이전에는 피아니스트였고, 또 그 이전에는 패션 디자이너였다. 학년이 거듭될 때마다 장래희망이 달라지고 있으므로 올 해도 바뀔지 아니면 계속 선생님일지 모를 일이다. 두어 달 전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훌륭한 선생님이 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
"그야 많지. 전달력, 포용력, 관찰력 그리고 친절해야 하고..."
"딱, 아빠네, 아빠!"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오는 딸아이에 말에 멋쩍긴 했지만 녀석이 사람 볼 줄 아네. 귀여운 녀석!
"아, 아니다. 아빤 언성남(목소리 높여 발끈하는 남자) 이라서 애들한테 점수 확 깎일 것 같아."
와, 녀석이 날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그땐 농으로 웃어넘겼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아빠로서 또 어른으로서 딸아이에게 반복적으로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기분에 조종당하고 감정에 휘둘리는 나 말이다. 이러다가 아내와 딸아이에게 '거리두기 3단계' 행정명령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신 차리지 못하면 '이카루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도 잊은 채 높이, 높이, 더 높이 오만하게 올라가다가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태양열에 녹으면서 에게해에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 무섭다!
기억할게.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아내는 이미 잠에 곯아떨어졌다. 대답은 아침에 다시 해야겠다. <아빠펜>이 딸아이의 지적(知的) 성장을 위한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나 또한 딸아이에게 아빠로서, 어른으로서 그리고 나 자신과 내 인생을 위해서라도 지적(知的) 성장의 변곡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아까 보지 못한 sonny의 100호 골을 감상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