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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소 대나무는 존버를 의심하지 않는다.

여자프로농구단 BNK 선수를 향한 전임 감독의 진심과 바람

by 리얼라이어
우리 선수들이 다른 팀 선수를 보고 동경하는 것 같아요.
같은 프로 선수인데 본인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네요.


지난 2월, 스포츠 기사를 통해 우연히 부산 BNK 썸 여자농구단이 청주 KB스타즈에 패하며 7연패 수렁에 빠진 소식을 접했다. 아울러 기사에는 당시 부산 BNK 썸의 수장(首長)인 유영주 감독이 선수단을 향한 진심 어린 바람이 담겨있었다. 이번 시즌 BNK는 단 5승에 그쳐 있었다. 남은 정규리그 2경기에서 1승이라도 거둬야 굴욕적인 1할 승률을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과연 프로팀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BNK의 선전을 염원했다. 유영주 전 감독의 모소 대나무 언급 때문이다.


가끔 왜 난 자라지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내 성장을 의심하며 잠자리에 든다.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 눈 뜨면 앞서가는 사람들의 뒤통수만 보인다. 이제 타인의 뒤통수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일은 그만 하면 좋으련만 딱히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또 제자리걸음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알아내야만 한다.


그런 내게 유영주 전 감독이 언급한 모소 대나무가 혹시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모소 대나무의 삶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BNK 선수들도 모소 대나무처럼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는지 모를 일이다. 허니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BNK의 남은 2경기에 촉각을 세우기로 했다. 부디 승전보를 전해오기를.




지난 3월, 국민은행 Liiv M 2020~2021 여자프로농구는 플레이 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을 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번 시즌에서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여자농구단은 정규리그 4위에 머물렀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WKBL 역사상 정규리그 승률 5할 미만의 하위권 팀이 일궈낸 우승이어서 스포츠 관련 언론들은 앞다퉈 소식을 전하기 바빴다. 말 그대로 언더독(Underdog)의 대반란이었다.


한 편 부산 BNK 썸 여자프로농구단은 다음 시즌을 이끌어갈 제2대 감독과 코치를 선임하여 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발표했다. 프로 스포츠 감독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극한 직업이다. 감독의 자리에서 대업을 이루고 박수 칠 때 떠나고 싶지만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거나 쫓겨나다시피 경질되면 흔적도 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BNK 초대 사령탑 유영주 감독은 지난 2년간 부진한 성적을 책임지고 정규리그를 경기를 모두 소화한 직후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약 20여 일이 지나 BNK는 그의 후임으로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박정은 현 WKBL 경기운영본부장을 감독으로 맞았다.


부산 BNK 썸 여자프로농구단은 지난 시즌에 창단한 신생 구단이다. 대한민국 여자 농구의 중흥을 이끈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유영주 전 감독이 초대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양지희·최윤아 코치가 합류하면서 WKBL 사상 첫 여성 감독·코치 조합인 팀이 됐다. 창단 첫해였던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 5위에 그쳤다. 하지만 10승을 거둬 올 시즌에는 플레이오프 진출도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더욱이 변연하 코치가 이번 시즌부터 스테프로 동행하게 되면서 BNK는 ‘어벤저스’급 사령탑을 꾸리게 돼 일명 ‘여벤저스’로 불리게 됐다.


이번 시즌 BNK의 출발은 좋았다. 3승 3패 5할 승률로 WKBL 6개 구단 중 3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한 달에 가까운 휴식기를 보낸 후 내리 9연패를 당했다. 크리스마스에 열린 홈경기에서 승리했지만 이후 또 4연패를 당했다. 이후 원정 경기에서 힘겹게 승리, 다시 연패의 고리를 이어가며 7연패 늪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리 막내 구단이라고 하지만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로 팬들을 실망시키고 있었다.


시즌 초반에 전문가들은 BNK가 이 정도의 결과를 내리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렵게 얻은 자유투를 빈번히 놓쳤고, 승부를 결정 지을 수 있는 상황에서 해결사가 보이지 않았다. 팀 경기력 저하는 비단 BNK 선수들 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눈에 띄는 작전이 없었다. ‘여벤저스’도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BNK 선수단은 총체적 난국이 되어 버렸다. 반면에 상대 팀들은 BNK와 경기를 치른 후 분위기를 전환해 나갔다.


BNK는 이번 시즌 WKBL 6개 구단 중 가장 많은 실점을 허용했고, 가장 적은 득점을 하고 말았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단, 29 득점에 그쳤다. 결국, BNK는 남은 정규리그 2경기에서도 모두 패하며 5승 25패로 이번 시즌을 마쳤다. ‘여벤저스’도 함께 막을 내렸다.




BNK는 20대가 주축인 팀이다. 패배를 하더라도 경험과 성장에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선수 자신과 팀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여자 농구 발전의 발판이 된다. 그러나 선수들은 연패를 거듭할수록 지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듯했다. 유영주 전 감독 또한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코트 안에서 프로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선수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서 모소 대나무 얘기를 꺼냈다.



모소 대나무는 한 동안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4년 정도 지나면 갑자기 큰다고 한다. 주변에서 '왜 자라지 않냐'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 나무를 심은 사람은 성장을 안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은 성장을 위해 힘을 다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본인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의심한다. 선수들에게 믿으라고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분명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자신을 믿고 더 자신감 있게 했으면 좋겠다.

출처 : [추운 겨울 보내는 유영주 부산 BNK 감독, '모소대나무' 언급한 이유] 일부 발췌_ 2021년 2월 17일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



유영주 전 감독이 믿고 있는 모소 대나무와 같은 성장 그리고 선수들을 향한 이와 같은 믿음은 이제 후임인 박정은 현 BNK 감독 체제에서 어떤 성과로 나타날지 두고 볼 일이다. 박정은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감독 선임 발표 현장에서 연습 때부터 선수들의 정신력과 마인드를 바꾸는 일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기는 농구에 대한 목표를 다짐했다.


모소 대나무는 씨앗이 뿌려진 후 4년 동안 3cm 밖에 자라지 않다가 5년이 되던 해부터 거짓말처럼 매일 30cm씩 자라 6주 차가 되면 빽빽한 대나무 숲을 이루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긴 시간 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모소 대나무는 그렇게 참고 견뎌내며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자.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좌절하지도 말자.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시간이다. 여전히 존버의 시간이다. 비교는 성장을 저해한다. 의심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자. 존버는 승리한다. 나도, BNK 선수 여러분도.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좌절하지 말자.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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