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혁신은 경제, 정치, 언론, 검찰, 사법, 체육, 문화, 행정 등등 오늘날 사회 구석구석에서 사용되면서도 명확한 개념을 구분하기 어려운 말에 꼽힌다. 둘 다 변화를 뜻하지만 내용상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개혁은 구조의 변화를, 혁신은 질의 변화를 가리킨다.
흔히 개혁과 혁신을 계란이 깨지는 방식에 따라 비유하기도 한다. 계란은 외부의 힘에 깨지면 음식이 되고, 내부의 힘에 깨지면 병아리가 된다. 양쪽 모두 계란이 깨져서 생긴 변화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온 병아리는 다시 닭이 되어 알을 낳는 창조적 가치를 지닌다. 이것이 혁신이다.
무릇 사람도 개혁과 혁신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 자신을 경험했고, 이 순간에도 잘못된 실수를 반복하는 나와 타인을 생각해본다면 쉽게 깨닫게 된다. 하물며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사회 이곳저곳에서 수장(首長) 한 사람 바뀌었다고 개혁과 혁신이 무 자르듯이 이뤄질까?
개혁과 혁신은 풀기 어려운 큰 수를 ‘소인수분해’하는 일과 같다. 소인수분해의 난이도는 자연수의 크기가 클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 이처럼 개혁과 혁신은 그 대상의 뿌리가 깊고 단단하게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따위의 것 일수록 변화의 길은 아득히 멀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난 주말, 딸아이에게 ‘소인수분해 개념과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배운 지 한참 지나서인지 소수, 합성수와 같은 용어부터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내의 마법 같은 설명 덕에 용어는 물론 개념까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소수'가 그랬다. '소수'는 2, 3, 5, 7, 11처럼 1보다 큰 자연수 중에서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지는 수를 말한다. 사실 ‘소수’는 말로 잘 와 닿지 않는다.
아내는 ‘소수’를 ‘외로운 수’로 불렀다. 그러면서 1과 자기 자신만을 약수로 가진 ‘외로운 수’가 같은 처지의 ‘외로운 수’를 만나 결혼하면(소수X소수) 가정(합성수)을 꾸리게 된다는 비유를 들어 용어의 설명을 대신했다. 아니, 1이 꼭 붙어 있는데 왜 ‘소수’를 외롭다고 부른 것일까? 이유가 궁금하던 찰나 딸아이가 물었다. 아내가 답했다.
인간은 사랑하지 않을 때 외롭기 때문이야!
아하! 아내의 말에 탄복하고 말았다. 수학을 인문학적 소재와 연결 지어 접했더라면 과거의 나는 ‘수포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학의 세계에 빠졌을지도 의문이지만 적어도 수학에 관한 두려움과 거부감은 덜했을 테다. 수학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나도 아내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었을까? 개혁과 혁신도 같다고 본다. 두려움과 거부감을 극복하는 일이 시작이자 끝이다.
‘소인수분해’는 주어진 합성수를 소인수들의 곱으로 나타내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용어와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자연수는 1, 소수, 합성수로 나뉜다. 1은 소수도 합성수도 아닌 자연수다. 1은 1 자체가 자신의 약수이자 모든 수의 약수다. 약수를 기준으로 자연수를 분류하면 1, 소수는 약수 2개, 합성수는 약수가 3개 이상이다.
인수는 정수, 다항식 등을 곱으로 나타낼 때, 그 곱해지는 정수나 다항식의 요소를 만한다. 즉, 약수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소인수는 주어진 자연수를 나누어 떨어뜨리는 약수 중에서 소수인 약수를 말한다.
가령 자연수 12의 인수는 1, 2, 3, 4, 6, 12고, 소인수는 2, 3이며, 소인수분해는 2x2x3 = 2²×3 = [2²×3]이 된다.
‘소인수분해’는 일반화된 공식이 없다. 따라서 공식에 대입하여 풀 수 없다. 대신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하나는 ‘가지치기’고 또 하나는 ‘거꾸로 나누기’다.
‘가지치기’ 방법은 약수들로 곱해서 소수가 나올 때까지 가지를 치며 적어 내려가는 방식이다. ‘거꾸로 나누기’ 방법은 ‘가지치기’와 다르게 한 가지 제약이 따르는데, 숫자를 나누는 자리에 소수만 오도록 적어 나누기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본인에게 편안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되 두 가지 모두 익히는 것을 추천한다. 시험에서는 한 가지로 방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과 혁신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공식이 없다. 대신 계획 > 실행 > 검증 > 개선 같은 굵직한 단계를 두고 목적하는 바를 추진한다. 이때 개혁과 혁신으로 인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 공청회, 포럼, 패널토의 등등처럼 의사결정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도 사전에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문제와 관련된 각 부서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테스크 포스를 조직하여 해결책의 집행, 해결 및 책임을 지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부여한다. 제약도 따른다. 대상이 거대하고 비대할수록 헌법의 위헌 소지가 있는지 살펴야 하고, 필요하다면 법도 만들어야 한다.
개혁과 혁신은 겉으로 봐서 느리게 진행되는 듯 보인다. 이를 보고 우린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직원으로서 답답해 한 적을 여러 번 겪었고 겪는 중이다. 그러나 개혁과 혁신이 진행 중인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하다. 집단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고, 상호작용에 관계되는 집단도 많다. 이를 연결하고, 조정하고, 통합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전 정권의 무능하고 부도덕함이 분노한 민심에 의해 심판받았다. 그리고 '이게 나라냐' 외쳤던 민심으로부터 현 정권이 탄생했다. 이후 경제, 정치, 언론, 검찰, 사법, 체육, 문화, 행정 등등 우리 사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 집단에 대한 개혁과 혁신을 착수했다.
그러나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렸다. 문제도 속출했다. 갈등도 심화됐다. 이 와중에 예상치 않은 전염병까지 1년 넘게 창궐하고 있다. 민심은 또다시 '이게 말이 되는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며 현 정권을 향해 비판과 비난을 성토하고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까마득한데 아쉽고, 속상하고, 화나고, 자괴감 드는 악재도 촛불 정권에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형국이다.
개혁과 혁신은 풀기 어려운 큰 수를 '소인수분해'하는 일과 같다. 소수는 '무한하고', 각각의 소수 사이에 '어떤 연관된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아주 큰 자연수가 주어졌을 때 그 수가 소수인지 합성수인지 알아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이러한 소수의 성질은 개인정보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현대사회에서 암호체계를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흔히 풀기 어려운 큰 수를 뒤엉켜 버린 실타래로 비유한다. 이럴 땐 차분하게 풀어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개혁과 혁신도 이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개혁이, 혁신이 이리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