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부모

학부모 되지 않기

by 앓아야 안다

“3.2kg, 건강하고 예쁜 공주님이네요”


아내는 잔인한 진통 끝에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습니다. 출산은 살아오면서 겪지 못한 극한의 고통이자, 최고의 희열입니다. 한없이 기쁘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벌써부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오래된 말이 익숙한 느낌입니다.


부부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됩니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투르죠. 부담감만큼 무거운 육아서적을 뒤지고, 스마트폰으로 맞던 틀리던 정보들을 검색합니다.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웁니다. 아이의 모든 감각에 집중합니다. 작은 울음소리에 놀라고 새근새근 숨소리에 안도합니다. 낯설지만, 아이를 통해서 부모가 되어갑니다.


많이 컸다며 주변 사람들은 놀라지만, 부모는 느끼지 못합니다. 지난 사진들을 통해서나 실감합니다. 우는 게 전부였던 아이는 옹알이로 자신을 표현하고, 기어 다니며 활동 영역을 넓혀갑니다.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이지만, 그 과정은 오롯이 부모를 전제로 합니다. 부모가 되는 '인고'의 시간과 함께 아이도 성장합니다.


아이의 모든 감각에 집중하던 부모도 조금씩 여유가 생깁니다. 기저귀를 뗀 아이 덕분인지, 육아에 단련이 된 자신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서툰 동작으로 어린이집, 유치원 가방을 등에 얹고 여럿 아이들 중에 하나가 됩니다. 내 아이가 잘 노는지, 잘 먹는지, 잘 자는지 걱정이 되지만 부모 또한 여러 직장인들 중에 하나입니다. 걱정은 정신없는 일과 속에 묻힙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방과 후 교실에서, 조부모에게 혹은 가사도우미에게 맡겨집니다. 부모는 더 열심히 일합니다. 아이도 유치원과 방과 후 교실과 조부모 혹은 가사도우미와의 일과에 적응해 갑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은 기본이고, 뭘 좀 더 해야 할까요?”


부모도 바빠지고, 아이는 더 바빠집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준비할 것이 많아집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온통 놀 생각뿐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은 다시 어린이집과 유치원 적응기 때를 복습합니다. 등하교를 책임지고, 점심급식을 먹으면 끝나는 학교 생활에 맞춰 일정 관리가 필요합니다. 과도한 사교육은 싫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몇 가지는 시키고 싶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방과 후 시간표를 짭니다. 다행히(?) 수많은 방과 후 프로그램과 학년별, 과목별 학원들이 아이들을 빈틈없이 담당합니다. 아이는 시간표에 따라서 성장합니다. 부모도 어느덧 '학부모'가 됩니다.


학부모는 부모와 다릅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지금'을 보지만, 학부모는 아이들의 '내일'에 집중합니다. 학부모는 아이들의 목표와 그에 따른 결과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각기 다른 아이들이지만, 목표와 결과는 획일적입니다. 무엇을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이렇게라도 해야만 못해도 중간은 할 거라는 못난 희망을 품습니다. 아이의 모든 감각에 집중하던 부모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아이들의 본래 모습도 사라집니다.


끝까지 부모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밤잠을 설치며 기저귀를 갈고, 옹알이에 귀를 기울였던 그때의 부모처럼 지금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또한 성장하는 과정 과정의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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